[이상언의 '더 모닝'] 노무현의 측근, 이재명의 측근

2021. 10. 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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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치인의 '측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노무현대통령의측근최도술ㆍ이광재ㆍ양길승관련권력형비리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 2003년 12월에 제정된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의 공식 명칭입니다. 법에 아예 ‘노무현대통령의측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실 이 아홉 자를 빼도 특검 수사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법안을 만든 야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자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넣은 것이었습니다. 이 법에 ‘측근의 정의’가 써 있는지를 살펴봤으나 없었습니다.

이 법에 적시된 3인은 그다음 해에 국회에서 의결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다시 등장합니다. 여기에 최도술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동창 출신 최측근’으로, 이광재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 같은 최측근’이라고 기술됐습니다. 양길승씨는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이라고만 표현됐습니다.

2003년 특검법에 양길승씨 관련 의혹은 ‘살인교사 및 조세포탈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청주 키스 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가 수사를 무마하기 위하여 행한 경찰 및 검찰 관계자와 양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에 대한 금품 제공 및 로비 의혹 사건’이라고 정리돼 있었습니다. 특검팀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양씨가 나이트클럽 사장 이씨로부터 금품을 받았음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뢰 혐의가 벗겨졌습니다.

이 특검법이 만들어진 2003년 말에 노무현 대통령과 양길승씨는 3년도 채 되지 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노 전 대통령 주변인 말을 보면 양씨는 2000년 12월에 서갑원 전 의원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양씨는 2002년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광주ㆍ전남 지역 ‘조직책’으로 활동하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 뒤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여소야대 국회가 법 이름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지극히 비법률적인 표현까지 넣은 잔혹 시절이었습니다. 야당의 이런 힘 자랑이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과반 의석 확보라는 역풍을 불렀습니다.

한편으로는 2003년 당시는 정치적 낭만이 있던 때였습니다. 양길승씨의 청주 나이트클럽 술자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대통령 측근’이라는 수식어가 빠짐없이 그의 이름 앞에 붙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왜 측근으로 분류되느냐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 측근이냐"고, “이광재ㆍ안희정쯤 돼야 측근이지 양길승은 아니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동규씨 문제가 커지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야당과 언론에 ‘측근의 정의’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진상ㆍ김용 정도는 돼야 측근이지 유동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두 차례 성남시장 선거를 도왔고, 자신이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요직에 앉혔고, 나중에는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사람인데, 측근은 아니라고 합니다.

가깝다와 가깝지 않다, 친하다와 친하지 않다는 구분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한쪽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나와 짜장면을 먹었다면 그럼 엄청 우리 친한 사이. 나와 삼겹살을 같이 먹었다면 그럼 엄청 친한 사이. 쌈을 싸지 않고 먹는다면 그건 아직 우리 사이가….’ ‘라야’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친하다와 친하지 않다’)입니다. 이 지사가 유씨와 친하지 않다니 할 말은 없습니다. 짜장면, 삼겹살처럼 나름의 기준이 있나 봅니다. 이제 '측근'이라는 말은 제3자가 당사자들 동의 없이 쓰기 어려운 용어가 됐습니다.

그래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이 지사와 유씨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동 책임"을 거론합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 국민의힘 “유동규 배임 드러나면 이재명은 공동책임”

「 “경기관광공사 사장 임명장 수여식을 하고 사진 찍는 절차를 준비했는데, 이재명 경기지사가 절차와 직원들을 물리고 ‘동규야, 이리 와라’ 하면서 바로 티타임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국민의힘 대장동게이트 TF 소속 박수영 의원이 5일 복수의 경기도청 관계자의 제보라며 페이스북에 소개한 내용이다. 이 지사가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해 “측근이 아니었다”며 거리를 두자 비판과 반박 제보가 쏟아졌다. 박 의원은 “또 다른 경기도청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유동규는 평소 이 지사가 ‘넘버1’, 정진상(이 지사 캠프 비서실 부실장)이 ‘넘버2’, 자신이 ‘넘버3’라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며 “넘버1이 자기 측근이 아니라고 했으니 넘버3가 변심해 다 불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받기로 한 돈도 다 못 받은 모양이던데”라고 썼다.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는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원주민 제보 녹취록이 공개됐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해당 주민은 “이 지사가 ‘시장이 되면 (민간) 사업이 진행하게 도와준다’고 했다가 당선 후 말을 바꿨다”며 “(면담 당시 유 전 본부장이) ‘절대 피해 안 가게 하겠다’고 해서 당신이 어떻게 책임지느냐고 하니 ‘내 말이 시장 말이다. 내 말이 이재명의 말이니까 믿고 기다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동규씨는 여러 정황상 이 지사를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측근이 아니라는 말을) 유씨가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다”고 꼬집었다.

야당이 두 사람의 친분을 강조하는 건 “이 지사가 업무상 배임 혐의의 공범”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 “이 지사가 설계자고 유동규는 실무자였다. 유동규에게 배임죄가 적용됐으니 이 지사가 이제 꼼짝달싹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유동규의 업무상 배임 행위가 드러나면 이 지사는 공동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온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성남시가 100%로 출자한 지방 공기업으로 성남시장이 감독기관이다. 대장동 사업 추진 당시 민간사업자 출자 승인 관련 검토보고서 등엔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 서명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사가 민간의 초과이익을 환수토록 하는 이른바 ‘캡’ 조항 삭제에 관여하는 등 사업 설계를 유 전 본부장과 함께 기획했다면 배임 혐의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날 “한전 직원이 뇌물을 받으면 대통령이 사퇴하느냐”고 반발했던 이 지사 측은 이날도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김홍국 경기도 대변인은 입장문을 내고 “박수영 의원 주장을 확인해 보니 현장에 있던 사람 누구도 관련 발언을 듣지 못한 허위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의혹에 침묵하고 있다’는 야당 공세와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답하면서다. 청와대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낸 건 처음이다.

한은화·김기정·하준호·강태화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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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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