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윤석열, 다른 듯 닮았다 [조성식의 통찰]
[조성식 기자]
"홍준표지. 윤석열은 안 돼!"
"응. 그렇구나."
박정희·박근혜 추종자인 친구와 얼마 전 나눈 대화다. 딱 여기까지만. 우리는 만나면 정치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 홍준표(67)와 윤석열(61)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9월 초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터지자 홍준표는 "윤석열에게는 악재만 남았고 내게는 기회만 남았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홍준표의 지지율 상승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당대표와 대선후보까지 지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홍준표가 어느 정도 검증된 것과 달리 '정치 신인' 윤석열을 둘러싼 의혹은 겹겹이 쌓인 까닭이다. 해명이 되든 안 되든 하나씩 터질 때마다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처가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비리 의혹 사건을 겨냥한 검찰과 공수처 수사는 시한폭탄이다. 홍준표의 표현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에서 '보수 궤멸'에 앞장섰다는 점도 약점이다. 이른바 보수우파 세력 중 내 친구처럼 '박근혜 구속'에 대한 분노를 윤석열에게 쏟아 붓는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이는 것도 불리하다.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세 차례 TV토론회에서 임금을 뜻하는 한자 '왕'자가 그려진 윤 전 총장의 손바닥을 캡처한 사진이 나돌았다. 지난 1일 MBN 주최로 열린 5차 TV토론회에서 윤 전 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1대1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흔드는 제스쳐를 하면서 손바닥에 적힌 '왕'자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
ⓒ 연합뉴스 |
10월 들어서는 손바닥 '왕(王)'자로 '주술 대선' 논쟁을 일으키더니 "위장 당원" 발언으로 경쟁 후보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면, 가히 역대급 맷집이다. 웬만해서는 사과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조차 매력으로 여기는 지지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객관적인 분석으로는 홍준표에게 운이 따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홍준표를 '럭키 가이'라고 부른다면 정작 당사자는 억울해 할지 모른다. 독선적이고 입이 거친 데다 공격적인 성향 탓에 당내 추종세력이 약해서 그렇지, 실은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일부의 평가가 그다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 |
ⓒ 유성호 |
홍준표는 25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당내 여러 보직을 거친 후 원내대표, 당대표를 역임했다. 이어 경남도지사를 두 차례 지내면서 행정 경험을 쌓은 후 2017년 5월엔 망해가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후 다시 당대표를 지내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홍준표가 '촛불민심'을 업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기 6개월 전인 2016년 12월, 검사 윤석열은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에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 파동으로 사실상 검사 생명이 끝났던 윤석열의 화려한 복귀였다.
사법시험 선후배인 홍준표(24회)와 윤석열(33회)은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있다. 스타검사 효시인 홍준표는 김영삼(YS) 정부가 출범한 1993년, 정관계 고위직들을 줄줄이 구속한 슬롯머신 사건 수사 이후 검찰 조직에서 따돌림 당했다. 당시 수사 대상자 중에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꼽히던 검찰 고위 간부도 있었는데, 평검사 홍준표는 언론을 활용한 여론수사로 지휘부를 압박해 뜻을 관철했다.
슬롯머신 수사가 끝난 후 검찰 내부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1년 동안 사건을 배당받지 못했다. 인지수사를 하려 해도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안기부로 파견 갔다. 그 후 수사부서에서 빼겠다는 수뇌부 의지로 내 뜻과 무관하게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배속됐다. 그래서 나온 거다.
호기롭게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돈이 안 됐다. '귀족형' 특수부가 아닌, '서민형' 강력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야망은 정치권으로 향했다. YS의 최대 정적이자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의원을 구속한 공 덕분인지 곧바로 여당인 신한국당 공천을 받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데는 때마침 히트한 SBS 드라마 <모래시계>도 한몫했다. '모래시계 검사'로 미화됐으니 말이다. 운도 따른 것이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예비후보 |
ⓒ 국회사진취재단 |
9수 만에 사시에 합격한 탓에 사법연수원 동기들 중에도 그를 '형'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의리'를 중시하는 그는 수사를 같이했던 후배검사들을 잘 챙겼는데, 뒷날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 된 후 유례없는 '정실인사'를 선보인 데는 그런 기질도 작용했다. 그의 남다른 '제 식구 챙기기'는 총장 시절 남다른 '제 식구 감싸기'로 진화했다.
홍준표와 윤석열은 둘 다 위에서 싫어하는 일을 밀어붙이다 화를 입었다는 유사점이 있다. 한 사람은 검찰 고위 간부를 잡아들여서 밉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정감사장이라는 공개석상에서 직속상관을 '수사 방해자'라고 들이받은 후 징계를 받았다. 다른 점은 홍준표는 호랑이처럼 뛰쳐나갔고, 윤석열은 곰처럼 버텼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친정'인 검찰에 대한 시각도 차이가 있다. 홍준표는 뒷날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나와 인터뷰할 때 "검찰의 조직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검찰은 검사의 개성이나 소신보다 조직의 보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국감장에서 조직을 뒤흔드는 폭로를 하면서도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며 검찰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나는 그가 항명 파동 이후 지방 한직을 옮겨 다닐 때 여러 차례 통화했는데, 한 번도 조직을 원망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용한 역술인의 예언이 있었던 걸까? 당시 그는 내게 정치권의 영입 제안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검찰에서 할 일이 많다"며 의연한 모습을 내비쳤다.
윤석열은 총장 시절 여권이 추진하는 수사/기소 분리를 강하게 반대했다. 총장직을 내던진 명분도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넘겨받을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결사반대였다. 반면 홍준표는 검찰의 수사권 축소에 찬성한다.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에 필요한 보완적 수사 기능만 갖게 하자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 공약만 빼면 여권의 검찰개혁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또 "정권의 사냥개" "조폭 의리" 따위의 거친 표현으로 검찰의 정치적 행태와 조직우선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의 꿈
두 사람 모두 이명박(MB) 정부 때 호시절을 보낸 것도 공통점이다. 홍준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인으로서 정점에 올랐고, 윤석열은 특수부 검사들이 선망하는 대검 중수부 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잇달아 지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전적으로 홍준표 덕이 컸다고 본다. BBK 대선 아니었느냐? 오로지 BBK로 시작해 BBK로 끝난 대선이다. 그 BBK 문제를 해결해준 게 누구냐?
한나라당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자신이 '형님'이라고 부르던 MB가 대통령이 된 후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을 욕심냈으나 주변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사석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조 기자! MB도 대통령 하는데 홍준표라고 못하라는 법 있소?" 나는 호응해주지 않았다.
▲ 국민의힘 윤석열(왼쪽), 홍준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 후보자 4차 방송토론회에서 진행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마지막으로 빠트리지 말아야 할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꾼다는 점이다. 홍준표는 사형제 부활을 예고했다. "영아 강간/살해범 등 흉악범을 사형시키겠다"는 홍준표의 발언에 대해 윤석열은 "행정부 수반이 형사 처벌과 관련한 사법 집행을 언급하는 건 어떻게 보면 좀 두테르테식"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의 홍준표 비판은,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란과 별개로 통치와 법치를 구별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인 '두테르테'라는 표현은 논외로 치고. 그런데 윤석열은 이후 대장동 사태를 언급하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화천대유 주인은 감옥에 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헐! 이건 뭐임? 오십 보, 백 보 아닌가? 난형난제다.
두 사람 모두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검사 출신이라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특히 윤석열은 검찰권력의 정점인 총장까지 지내면서 평생 '단죄권력'을 누린 사람이다. 정의도 좋고 공정도 좋지만, 자칫 법치를 훼손할 수 있는 이런 위험한 발언이 시대정신에 맞는지 모르겠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문재인 정권을 확실히 단죄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혼내주고 벌 주는 걸 잘할 것 같은 사람을 국가지도자로 뽑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실정(失政)은 제도와 정책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지도자는 남을 비판하고 혼내기 전에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이 점에서 여권의 강력한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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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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