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같았던 소상공인 건의서, 정치는 뭘 하고 있나" [대선주자에게 듣는다]
[이경태, 박소희, 김성욱, 남소연 기자]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가 5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난 9월 27일 부산에서 만난 '소상공인 생존연대' 관계자들의 정책건의서를 "어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 같은 글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코로나19 장기화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꼽았다.
무엇보다 이낙연 후보는 "(부산에서 소상공인 생존연대를 만난) 바로 다음날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위드코로나 예산) 40조 원 긴급편성을 제안했는데 지금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준비되지 않으면 당이라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이 후보는 '위드코로나 소상공인 특별대책' 발표를 통해 ▲손실보상과 피해지원을 위한 20조 원의 재정 투자 ▲20조 원 규모의 한국형 임금보호제 도입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과 임대료 압박 해결 등을 제안했었다.
이 대표는 특히 "당이 '굼뜨다' 정도가 아니라 둔감해진 것 같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급한데 지금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또 몇 명이 어떻게 될 지 모르지 않느냐"면서 "정치가 그런 감수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국민들과 계속 괴리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루에 900개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고 있고 자영업자 수십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더 이상 정치가 외면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기획재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코로나19 관련 예산편성 때마다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에 대해선 "(재난지원금 지급범위와 다르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회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 (철학이 아닌) 정도의 문제다. 당정간의 이견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차기 지도자의 덕목으로 강조한 것은 '통찰'과 '경험'이었다. 그는 '2030세대의 표심을 어떻게 공략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함께 애환을 나누고 고민을 나눌 공감의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통찰을 갖고 수십 년의 미래를 미리 준비할 지도자에 좀 더 의지하고 싶지 않겠나"라며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답했다.
'국회의원·도지사·국무총리 등 본인의 풍부한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적격이란 의미인가'란 질문엔 "우리가 했던 정책의 수많은 실패가 왜곡, 오해, 무시, 저항 등이 생겨서인데 경험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미리 알게 해준다. 그게 경험의 힘"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초유의 대선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 여야 1위 후보 모두가 최소한 피고발인 신분이고 그 수사가 점점 (후보들을 향해) 좁혀지는 것 같다"면서 "국민과 당원의 고민이 당연히 있으리라고 본다. 이번 대선이 고발 사주 대선, 대장동 대선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결단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5일 <오마이뉴스>가 이 후보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절박한데... 민주당이 둔감해진 것 같다"
-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소상공인·자영업자다. 지난번에 부산에서 만난 골목상인들을 보니 골목시장이 훨씬 더 위협에 취약하다. 거기(골목시장) 문 닫은 치킨집에서 같이 만난 소상공인 생존연대 사람이 정책건의서를 낭독했다. 들어보니 정책건의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 같은 글이었다.
제가 얼어붙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저 정도로 절박하구나. 죽음 앞에서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책 결정·예산 책정 이런 제도적 절차가 죽음보다도 간절한가.' 자괴감이 들어서 바로 다음날 40조 원 긴급 편성을 제안했다. 급하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또 몇 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정치가 그런 감수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국민들과 계속 괴리가 있을 거다. 제일 먼저 돌봐야 될 분들, 만나야 될 분들이 그런 분들이다."
- 그게 민주당의 위기이자 정부의 위기일 수도 있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우리 당이 '굼뜨다' 정도가 아니라 둔감해진 것 같다."
- '위드코로나 예산 40조 원 추가 확보' 관련해서, 사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예산 편성 때마다 기획재정부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어떻게 설득해 관철할 것인가.
"재난지원금의 지급범위를 놓고는 당정 간에 때론 견해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철학의 문제다. 하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더 지원하자, 특히 회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도의 문제다. 이건 재난지원금 같이 당정 간에 이견이 또 올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게 옳다. (그때와) 다르다.
저는 몇 개월 전부터 '내년에는 회복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하고, 그것을 위한 정책과 예산의 준비가 필요하다. 650조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부가 회복을 위한 정책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직 보도되지 않았다. 또 예산도 예년 편성 방식에 조금 더 얹은 605조 원을 편성해서 국회에 제출했다.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45조 원 정도 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40조 원이라도 긴급 편성하자고 요청했다. 당정간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회복을 위한) 정책이 준비되냐 아니냐다. 이런 게 필요하고, 그러면 돈이 이만큼 필요하다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준비되지 않으면 당이라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낌새가 안 보인다.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에 900개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고 있다. 또 (자영업자) 수십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더 이상 정치가 외면할 수 없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 어제(4일) 남북통신선이 복원되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같은 날 '대통령이 되면 곧바로 대북특사를 보내겠다'고도 했는데, 지금부터 차기정부가 세워질 때까지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통령선거까지, 또 그 이후도 문재인 대통령께서 다 (역할을) 하실 것이다. 그런 의지가 확고하신 분이다. 단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나오면 (문 대통령과 당선자가) 중요한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거다. 그 기간, (새 대통령 당선 후 취임까지) 2개월 사이에 (대북)특사를 보내서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게 좋다."
- 혹시 특사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은 있는가.
"아이고, 빨라도 너무 빠르다. 염두에 둔 사람은 있다.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오만한 것이다."
- 다른 후보에 비해서 여성 지지가 높은 편이고 성범죄나 여성암 관련 세세한 공약들을 내놨다. 좀더 굵직한 의제, 예를 들어 남녀동수내각이나 성평등 국가는 어떻게 고민하고 있나.
"언제라고 (내다)볼 수는 없지만, 남녀동수내각까지 갈 수 있길 바란다. 단지 제가 그걸 숫자로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여성 장관) 30%를 약속했는데 결국 무너졌다. 복원되길 바라지만 저도 각료 제청을 하면서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았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쉬워질 거다. 여성들에게 그만한 역량이 많이 생기고, 또 그만한 분들이 늘어날 테니 남녀동수내각으로 접근해가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공공과 민간에서의 남녀 임금격차, 빨리 완화해야 한다. 또 공공이나 민간 부문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들이 좀 더 많이 참여해서 좀 더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게 당장 시급하다."
- 정치개혁도 중요한 문제인데 대선 국면에서 권력구조 개헌은 제대로 논의 안 되는 편 같다.
"저는 여러 차례 기본권 강화와 평등권 확보, 균형발전, 토지공개념 내실화 등을 위한 개헌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른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확충을 위한 개헌이다. 그리고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면 4년 중임제가 괜찮겠다는 얘기도 했다."
- 기본권 개헌이 먼저라는 말인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왕 (개헌)하는 것, 정부 형태도 논의한다면, 그중에 하나 고르라면, 한국 현실에선 4년 중임제가 낫겠다는 말씀은 드린 적 있다."
"지도자는 미래 준비를... 고발 사주 대선, 대장동 대선 되지 않길"
- 최근 정치권에서 2030세대가 화두다. 그 세대를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공략하려고 하는가.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 청년들이 앞으로 수십년 살아갈 세상은 지금 기성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사뭇 다르지 않을까. 그에 대한 통찰을 갖고 미리 준비해놓는 게 필요하다. 청년들은 때론 친구 같은 지도자를 원하겠지만, 때론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애환을 나누고 고민을 나눌 공감의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통찰을 갖고 수십 년의 미래를 미리 준비할 지도자에 좀 더 의지하고 싶지 않을까. (청년들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고,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
- 도지사, 총리, 국회의원 등 풍부한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더 적격이라는 의미인가.
"경험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경험은 '어떤 길은 아닌 것 같다'는 모종의 제동장치 같은 게 작동하도록 만든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뢰밭이 있다. 행정도, 정책도 그렇다. 몇 단계를 거쳐가면서 왜곡이나 오해, 저항, 냉소 같은 게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없어야 소기의 성과를 내는데, 그에 부닥치면 정책이 실패한다.
우리가 했던 정책의 수많은 실패가 왜곡, 오해, 무시, 저항 등이 생겨서 실패했다. 그런 것이 없도록 하는 게 경험이다. 경험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미리 알게 해준다. 그게 경험의 힘이다."
- 마지막으로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면?
"초유의 대선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 여야 1위 후보가 모두가 최소한 피고발인 신분이고, 그 수사가 점점 좁혀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 그건 대한민국에 불행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 대한 국민과 당원의 고민이 당연히 있으리라고 본다. 이번 대선이 고발 사주 대선, 대장동 대선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결단했으면 한다."
(* 이전 인터뷰 기사 "1위 후보 위기는 민주당의 위기... 경선 불복? 안 끝났는데 왜 묻나" http://omn.kr/1vg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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