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가도로 아래에 알록달록 컨테이너 180개, 이게 뭐꼬?
다리 밑은 잉여 공간이다. 사람이나 차가 다리 위를 통과하게끔 하는 게 다리의 용도여서다. 고가도로 아래 세상은 더 큰 잉여 공간이다. 긴 고가도로만큼 긴 방치 공간이 이어진다. 지하가 아닌데 지하 같은 세상이어서, 다리 아래 공간은 안 좋은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어둡고 냄새나고, 왠지 찜찜하고 꺼림칙하다.
부산 수영구 지하철 3호선 망미역 주변의 수영고가도로 아래는, 다리 밑 세상에 관한 오랜 통념을 깬다. 고가도로 아래로 알록달록한 컨테이너가 800m나 도열한 덕분이다. 부산항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가 왜 고가도로 아래에 일렬로 서 있을까. 그것도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색칠한 채. 멀리서 보면 레고 블록을 붙여 놓은 것 같다.
이 길 아래 세상의 이름은 ‘비콘(B-Con) 그라운드’다. 부산(Busan)과 컨테이너(Container)에서 영어 첫 철자를 따왔다. 고가 아래에 굳이 컨테이너를 갖다놓은 건, 컨테이너가 항구 부산을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서였다.
비콘 그라운드는 문체부 예산 90억원을 들여 조성한 복합생활문화공간이다. 고가도로 아래에 컨테이너 180개를 설치해 51개 공간을 또 만들었다. 이 51개 공간에 주민 사랑방, 갤러리, 공방, 창작실, 식당, 카페, 술집 등이 들어간다. 비콘 그라운드는 국내에서 처음 조성한 고가 밑 문화관광 시설이다.
컨테이너 여행은 망미역이 있는 망미사거리에서 시작한다. 망미사거리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컨테이너가 늘어섰다. 망미역 1번 출구로 나오면 고가 아래에 주민 사랑방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그라운드와 장애 예술인의 창작공간인 패밀리데크가 있다. 반대편으로는 야외 공간, 쇼핑그라운드, 플레이그라운드, 아트갤러리가 차례로 이어진다. 식당과 카페, 쇼핑몰이 모인 쇼핑그라운드가 300m 길이로 가장 길다. 저녁 시간이면 고가 밑 컨테이너에 조명이 들어와 분위기가 한결 그윽해진다.
비콘 그라운드는 아직 활성화하지 못했다. 51개 실 중에서 45개가 차 있다지만,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하다.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비콘 그라운드는 하필이면 지난해 11월 개장했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1년째 악전고투 중이다. 아트 갤러리에서 부정기적으로 나만의 컵 만들기나 목걸이 만들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공연 같은 이벤트를 여는 정도다. 쇼핑그라운드 카페에서 파는 동유럽식 굴뚝 빵이 그나마 선전 중이다.
김재승 운영팀장은 “11월부터 비콘 그라운드를 거점으로 망미동 일대와 연계해 망미 아트빌리지 사업이 진행된다”며 “골목영화제, 인문학 교실, 뉴미디어 전시, 마을 도슨트 등 프로그램이 예정됐다”고 말했다.
비콘 그라운드 주변 망미동 골목이 문화관광 탐방로로 조성 중이다. 비콘 그라운드 주위로 독립책방과 공방, 편집숍, 갤러리가 모여 있다. 조만간 고가 아래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사진이 SNS에서 자주 보일 것 같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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