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중대사관 '물밑외교' 예산 80% 술·선물 사는데 썼다

박현주 2021. 10.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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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들이 해외에서 주요 인사와 물밑 접촉을 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 배정된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의 상당 부분을 선물이나 주류 구매에 사용, 지침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중국 대사관의 경우 전체 네트워크 구축비의 80% 이상이 그렇게 쓰였다. 발로 뛰는 외교 대신 앉아서 선물만 뿌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장하성 주중대사 등 중국지역 공관장들이 대면 회의를 위해 모인 모습. 연합뉴스.


네트워크 예산 84% 술 사고, 선물 사고…


5일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2021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내역'에 따르면, 주중국 대사관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집행액 약 2억 4180만원의 84.8%인 약 2억 260만원을 선물과 주류를 사는 데 썼다.

주중 대사관은 이 의원실이 분석한 39개 해외 공관 중 총 집행액 대비 선물ㆍ주류 구매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이어 주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77%), 주상하이 총영사관(75.7%), 주광저우 총영사관(74%), 주인도 대사관(67.8%) 순이었다. "39개 공관을 분석해보니 세 곳 중 한 곳 꼴로 총 집행액 대비 선물ㆍ주류 구매 비율이 50%가 넘는 과다 집행을 하고 있었다"고 이 의원실은 지적했다.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에서 선물ㆍ주류 비용 집행 비중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비공개 외교인사 대면 접촉 실적은 낮다는 뜻으로 볼 여지가 있다. 주중 대사관의 비공개 외교활동 관련 인사 접촉 건수는 2017년 세 자릿수에서, 지난해와 올해 두 자릿수대로 줄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접촉이 제한되는 환경을 고려한다고 해도 외교관의 주요 임무가 주재국 주요 인사들과 접촉해 국익을 신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재외공관별 외교네트워크 구축비 집행 내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원래 사람 만나 쓰기도 벅찬데…"


외교부의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지침에 따르면 "과도한 선물ㆍ주류 비용 집행을 삼가야 한다"고 돼 있다. 보안이 요구되는 주재국 주요 인사와 직접 만나 정무활동ㆍ경제외교ㆍ영사 등 각 분야 외교 활동을 위해 주로 쓰라는 취지다.
실제로 주중 대사관의 선물ㆍ주류 구매 비중은 주요 4대 공관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미국 대사관은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액의 20.4%를, 일본 대사관은 27.4%를, 러시아 대사관은 55.7%를 선물ㆍ주류 구매에 썼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각 공관의 외교 활동 중 민감하거나 보안이 요구되는 자료는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일부 내역을 갖고 공관 자체의 실적을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주중 대사관의 경우 중국의 문화 특성상 주재국 인사에게 술과 선물을 전달할 상황이 특히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특성을 고려해도 예산의 80%를 선물ㆍ주류 구매에 쓴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와 관련해 "매년 비공개 인사 접촉 건수가 200~300건씩은 되기 때문에 네트워크 관련 비용은 원래 사람 만나는 데 쓰기도 벅찼다"며 "주재국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니, 이왕 받아둔 예산을 선물이나 주류 구매에 소진해버리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에선 동양 특유의 선물 문화가 퍼져 있고,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이 제한된 사정이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주중대사관의) 주류ㆍ선물 구입 비중이 유난히 높아보이는 건 사실"이라며 "선물을 사서 보내는 것 외에 상대적으로 다른 활동을 못하고 있나 싶다"고 말했다.


본부 감시ㆍ감독 소홀 지적도


외교부 본부의 감시ㆍ감독이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 공관의 활동비는 ▶공개 활동을 위한 '주요 행사비' ▶비공개 접촉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비' ▶기타 일반적인 공관 업무에 들어가는 '기본경비 활동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각 재외 공관은 세부 집행 내역을 반기별로 보고하며,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 내역과 비공개 외교인사 접촉 기록의 경우 외교부의 주재국 외교 정보 수집, 해당 공관의 실적 평가 및 인사 관리에 활용된다.

하지만 네트워크 구축비와 관련해선 사실상 외교관들의 쌈짓돈으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매년 반복돼왔다. 올해만 해도 해당 예산이 주재국 대사 부인의 모임 회비에 사용되거나 공관 직원들이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식사비 등을 결제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아 지침을 어긴 사례 등이 포착됐다.

이에 외교부는 네트워크 구축비 규모를 지난 2018년 약 78억원 → 2019년 약 67억원 → 지난해 약 49억원 규모로 줄여나가는 추세다. 다만 국정감사 기간 등 계기에 네트워크 구축비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외교부가 실질적인 시정 노력보다는 "공개된 네트워크 구축비 관련 활동은 빙산의 일각일 뿐,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활발하게 물밑 외교를 벌이고 있다"는 해명만 반복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산을 줄이고 논란을 피하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본연의 취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외 공관에 대한 사전 계도 및 사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태규 의원은 "보안이 요구되는 긴요한 대면접촉 외교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본래 역할에서 벗어나 선물ㆍ주류비용 등으로 과도하게 집행된다면 제대로 된 외교 활동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외교부 본부 차원에서 엄중한 감사와 계도를 통해 전략에 맞는 최적화된 외교 활동을 이끌어야 함에도 이를 방치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뉴스1.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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