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문 연 리움미술관, 코로나 시대 인간을 돌아보다

손영옥 2021. 10. 6. 04: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휴관 1년 7개월 만에 재개관전
자코메티·조지 시걸·백남준 등
기획전은 국내외 유명 작가전시
상설전선 새로운 작품 대거 공개

국내 최대 민간 뮤지엄인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이 8일 재개관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2월 운영을 전면 중단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리움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여파로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부관장이 사임한 뒤 상설전은 열면서도 기획전은 중단하는 등 4년 넘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기획전을 통해 동시대 이슈를 선점하며 국내외 작가를 발굴·홍보하는 리움의 부재가 장기화되고 여타 기업 미술관이 대체재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서 미술계는 리움의 재개관을 고대해왔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재개관을 사흘 앞두고 5일 언론에 전시장을 공개했다. 하이라이트인 기획전은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을 주제로 예술의 근원인 인간을 돌아본다. 출퇴근하는 군상을 담은 조지 시걸의 조각 ‘러시 아워’가 전시된 도입부. 리움 제공


언론에 미리 공개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재개관전을 5일 다녀왔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기획전 주제로 리움이 들고나온 것은 ‘인간’이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주제 자체는 일단 합격점이다. 가장 뜨거운 담론이 된 포스트휴머니즘, 즉 인간과 동물의 공생 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이를 포함해 이성에 대한 믿음이 깨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 과정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에 담아 순차적으로 훑는 방식을 택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참한 전쟁 이후 인류가 겪은 실존의 고통을 철사처럼 가늘고 긴 인체로 형상화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거대한 여인 Ⅲ’, 출근길 무표정한 사람들을 담은 조지 시걸의 조각 ‘러시아워’가 관람객을 맞는다.

인어공주 조각상을 패러디한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조각 등 가부장 신화를 전복하는 작품들로 꾸려진 '모두의 방' 섹션. 리움 제공


전시 동선은 자연스럽게 이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거나, 기괴하게 뒤틀린 신체 이미지를 동원해 인간다움을 규정하는 단일한 정체성을 파괴하는 작품들로 이어진다. 여성의 가슴이 돼지처럼 여러 개로 묘사된, 페미니스트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인어공주 신화를 전복하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조각 등이 눈길을 끈다. 국제결혼 경험이 계기가 된 김옥선의 다문화가정 사진, 중산층의 욕망을 파헤치는 정연두의 아파트 사진도 나왔다.

동선의 종착지는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다룬 백남준의 ‘로봇 K-456’, 이불의 사이보그 연작에는 기계를 통한 신체의 확장을 꿈꾸는 낙관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낙관주의는 종말을 맞았고, 인류는 이제 지구 위에 사는 다른 생명체와 공존을 모색한다.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피에르 위그의 영상 ‘이상’(理想)이다. 화면 위에 실체가 모호한 생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상은 그 낯선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낯선 공생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는지 우리에게 묻는듯하다.

현대미술 상설전 가운데 ‘이상한 행성’ 섹션은 주제 측면에서 기획전의 연장에 있다. 노란 고치 형태의 아니카 이의 작품 등은 살아 있는 기계를 보는 듯해 포스트휴머니즘을 상기시킨다.

상설전이 소장품으로 꾸리는 것과 달리 기획전은 주제에 맞게 외부에 열려 있다. 이번 기획전에는 51명(팀)의 131점이 초청됐는데, 23점만이 소장품이다.

상설전에선 40대 김도균 작가 등 신선한 얼굴도 많이 볼 수 있다. 태현선 학예연구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과거에는 대가 중심으로 소개되다 보니 소장품이 충분히 소개되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국보나 보물 중심, 미술사의 대표작가 중심이 아니라 가려진 작가들도 제대로 보여주고자 주제별로 전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미술 상설전은 전시 방식이 고루하다. 김홍도의 ‘군선도’ 등 국보 6점, 보물 4점 등 고미술 154점 속에 현대미술 6점을 전시했다. 4개 층을 할애해 고려시대 유물을 다룬 ‘푸른빛 문양 한 점’,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다룬 ‘흰빛의 여정’, 서화를 다룬 ‘감상의 취향’, 불교미술과 공예품을 다룬 ‘권위와 화려함의 세계’로 구분했다. 제목만 시적으로 포장됐을 뿐 개별 유물은 유리 진열장 속에 어떤 서사나 맥락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서화 코너에서도 이한철의 ‘이항복 초상’, 김득신의 ‘환어행렬도’, 안중식의 ‘도원문진도’ 등 인물화 기록화 산수화 등이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나열돼 있다. 리움의 소장품이니 그 자체로 볼거리라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분청사기와 백자를 전시할 때 도자기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도자기 속 무늬를 진열장의 배경으로 꺼내 서사를 만들어내는 등 전시문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선형의 새로운 로고가 박힌 미술관 입구. 리움 제공


새롭게 단장한 로비는 패션과 미술, 무대 설치를 오가는 정구호씨가 총괄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정구호 스타일답게 검은색으로 통일감을 줬지만 다소 위압감을 주는 점이 아쉽다.

용인 호암미술관은 금속공예를 통해 한국미술의 역사를 짚어보는 융합형 전시 ‘야금: 위대한 지혜’를 선보인다. 리움 상설전은 상시 무료이고 리움과 호암의 기획전은 연말까지 무료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