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교회-보시기에 좋았더라] 수도권 매립지 인천 서구서 '쓰레기 제로' 운동.. 지역사회 아픔 품다

안규영 2021. 10.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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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새로운 교회의 길 (18) '제로웨이스트' 검단참좋은교회 유승범 목사
유승범 인천 검단참좋은교회 목사가 교회 공간을 활용해 연 제로웨이스트 상점에서 다회용 용기에 주방세제를 리필하고 있다. 유 목사가 입고 있는 앞치마에는 ‘잘 버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나도 버리스타’가 적혀있다. 인천=신석현 인턴기자


“크리스천의 삶은 ‘제로웨이스트’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삶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단순하게, 그리고 비우면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5일 인천 서구 검단참좋은교회에서 만난 유승범 목사는 제로웨이스트가 크리스천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로웨이스트는 쓰레기 배출량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환경 운동이다. 검단신도시의 첫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연 검단참좋은교회는 올해의 녹색교회로 선정된 바 있다. 유 목사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비롯해 자원순환센터, 텃밭 가꾸기 등 지역사회의 환경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유 목사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2018년 ‘이웃 삼고 싶은 교회’를 슬로건으로 검단신도시에 개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좌절했다. 그는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교회를 바랐는데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건물 공간이 텅 비게 됐고, 인천 지역에서 교회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심해졌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코로나 시기 교회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 무엇일지’를 깊이 고민했고, 기도 끝에 ‘지역사회의 아픔’을 안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인천 서구가 서울 및 수도권에서 오는 쓰레기가 묻히는 수도권 매립지라는 점에서 ‘쓰레기와 환경’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제로웨이스트와 미니멀 라이프(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에 관심이 많던 사모도 검단참좋은교회가 녹색교회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 목사는 지난 5월 비어있는 교회 공간 일부를 제로웨이스트 상점과 자원순환센터 구역으로 개조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에선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칫솔, 재활용 가능 삼베를 이용한 커피 필터, 다회용 천 장바구니, 플라스틱이 아닌 고무로 만든 빨대 등 친환경 제품을 판매한다. 세탁세제나 섬유유연제가 대량으로 담긴 큰 통도 진열돼있는데, 다회용 용기를 가져온 소비자는 여기에서 내용물만 다시 채워갈 수 있다.

교회의 다른 벽에 세워진 자원순환센터 구역은 주민들이 가져온 재활용 쓰레기를 구청, 우체국 등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종이팩이나 폐건전지, 아이스팩, 포장용 에어캡을 가져오면 종량제 쓰레기봉투 등으로 교환해준다.

유 목사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운영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주민들과 가까워졌다고 했다. 유 목사는 “개척 이후 ‘동네에 교회가 생겨서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내줘서 고맙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지역사회와 교회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익 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건 상점 운영의 어려운 점이다. 유 목사는 “친환경 제품은 공장식 대량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일반 제품보다 비싼데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구경 오는 이들은 많지만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건 적어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녹색교회로서의 존재 양식’이 아닌 ‘교회 자립을 위한 수단’으로 오해하는 시선 역시 유 목사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다. 유 목사는 “상점이 이슈화되자 ‘이걸로 돈을 벌었는지’ ‘교인이 늘었는지’ 등을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상점은 지역사회의 환경을 섬기기 위해 세운 하나의 가치관이지, 수단화된 도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위 사진)과 유아 놀이방 전경. 인천=신석현 인턴기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 목사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전국 제로웨이스트 상점 80여곳과 연대해 기업에 멸균팩의 수거 책임을 묻는 ‘멸종위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포장재 안쪽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멸균팩은 그렇지 않은 일반팩과 다르지만, ‘종이팩’으로 함께 묶여 배출돼 재활용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문제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기업에 일정 책임을 제기하는 캠페인”이라고 설명했다.

유 목사는 상점 외에도 인천 아라뱃길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 텃밭 가꾸기 등을 통해 녹색 운동의 씨를 지역사회에 뿌리고 있다. 그리고 이 씨앗은 퍼지고 있다. 그의 플로깅 행사에 참여했던 한 청년이 검단신도시 전체로 확대해 또 다른 플로깅 행사를 여는 식이다. 유 목사의 텃밭에서 진로 교육 차원으로 함께 일했던 발달장애청년들은 인천 서구의 두 번째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유 목사는 존립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가 환경선교를 통해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 교회라는 이름만 갖고 있을 때는 교회에 대한 수많은 편견으로 주민과 소통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플로깅 아재’ ‘상점 주인’ 등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말했다. 유 목사의 명함에는 ‘검단참좋은교회의 목사’ 대신 ‘제로웨이스트 상점 자연공간 숨의 대표’가 적혀있다. 그는 “교회와 목사 이름을 가렸음에도 오히려 주민들이 교회와 목사, 이들의 활동을 궁금해하는 게 진정한 선교”라며 “교회의 양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를 떠나서 지역사회의 아픔을 안는 교회가 돼야 한다. 그리고 기후 위기 속 그 아픔은 바로 창조세계의 파괴”라고 말했다.

인천=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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