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야성 키우려 어둠 속 산기도.. "닫혔던 예배의 길도 기도로 열었죠"
4일 오후 8시 경남 창원 무학산 주차장. 거제 고현교회 승합차 3대가 들어왔다. 등산복 차림의 부교역자 9명이 산악용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내렸다. 등산용 스틱까지 챙긴 박정곤(62) 고현교회 목사가 입을 열었다. “다들 준비됐제? 돌이 많으니 발목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데이.”
학봉(397m) 등반이 시작됐다. 정상까지 0.67㎞에 불과했지만, 경사가 60도가 넘어 금세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정상 부근은 돌산이었다. 양손으로 바위를 짚어가며 올라가야 할 정도로 난코스였다. 40분 만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한눈에 창원 마산합포구 야경이 펼쳐졌다.
“자, 잠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개인 기도에 들어갑시다.” 박 목사의 지도에 따라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가 울려 퍼졌다. 부교역자들은 두 팔 벌려 “주여”를 삼창하고 “생존을 위해 사는 생계형 목사가 아니라 사명을 위해 사는 진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다.
무릎 꿇고 기도하던 하진호(33) 강도사는 “지난해 처음 산기도를 시작했는데, 영적 파워가 보통이 아니었다. 순교자, 신앙 선배의 영성이 여기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영적 감동이 커서 최근엔 유치부 교사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기도했다”면서 “산기도야말로 코로나로 인한 영적 우울증을 한 번에 돌파하고 영적 야성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상 아래편엔 십자 모양으로 갈라진 가로 1m, 세로 3m 남짓의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무학산 십자바위로 순교자 주기철 목사(1897~1944)가 90년 전 무릎 꿇고 기도하던 그 자리다. 1931년 7월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한 주 목사는 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로 떠나기 전까지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민족해방을 간구하고자 교회서 3㎞ 떨어진 이곳을 매일 찾았다.
방영진(44) 부목사는 “주 목사님은 이곳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확신을 주실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면서 “그 기도는 ‘일제의 모진 탄압 속에서 연약한 종을 내버려 두지 마시고 지혜와 능력을 달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기천(50) 부목사도 “주 목사님이 기도할 때는 랜턴이 없던 시절이니 초저녁 산에 올라 밤새 기도하고 새벽 미명에 하산하셨을 것”이라면서 “수많은 주의 종이 주 목사님처럼 이곳에서 나라와 민족, 교회, 가정을 위한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고현교회 부목사들이 역사적인 산기도 현장을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박 목사가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으면서다. 지난해 8월 코로나로 예배 전면 금지명령이 떨어지자 박 목사는 경남기총 대표 자격으로 경남도지사를 만나 담판을 짓는다. 그전에 4일 연속 부교역자들과 이곳을 찾았다.
김승윤(38) 부목사는 “지난해 태풍이 올라와 새벽 2시까지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부교역자 전원이 이곳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았고 경남도지사로부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조건으로 예배를 허용한다는 답변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동행한 김윤탁(79) 장로는 “예배 회복을 위해 산기도 하는 부교역자들이 고현교회 강단에서 메시지를 전할 때 영적 권위가 느껴진다”면서 “말씀의 깊이와 은혜가 있는 젊은 목사님들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박 목사가 격주로 부교역자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자신이 산기도 간증이 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15세이던 74년 목회 소명을 받았는데, 매주 한 번씩 이곳을 찾았다”면서 “84년 부산 고신대 신학과에 입학한 후부턴 매주 화요일 십자바위에서 혼자 기도했다. 담당했던 주일학교가 6개월 만에 250명에서 750명으로, 중고등부가 120명에서 350명으로 부흥하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거제에서 1시간30분 걸려 이곳까지 오는 것은 십자바위가 주는 영적 상징성, 영권, 수많은 간증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교회는 신앙 선배처럼 반드시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기도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려오는 길에 지하수 한 바가지를 마셨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 꽉 막힌 우리 심령에 산기도가 이런 작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원=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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