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포퓰리즘에 질식하는 청년 희망
기성세대가 20~30대 MZ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서울 강서구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중년 기업인의 얘기를 듣고서야 MZ세대의 고충을 실감했다. 그 고충은 다름 아닌 주택 문제라고 한다.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직장을 얻기도 어렵지만, 그건 출발에 불과하다. 문제는 주거 비용이다.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은 250만원 안팎이다. 연봉 3000만원쯤 된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떼면 쥐는 돈은 더 작아진다. 여기서 월세가 뭉텅 나간다.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세는 좀 괜찮다 싶으면 70만원쯤 한다.
취직해도 월세 내면 저축 어렵고
전세 급등해 월세로 다시 내몰려
25만원 주고 빚더미 떠넘겨서야
강서구는 최근 마곡을 중심으로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그에 맞춘 주택 공급이 부족해 원룸 월세가 조금 더 비싸다. 중소기업 초년병 소득의 30% 이상이 주거비용으로 나가는 셈이다. 생활비까지 쓰면 저축할 여력은 더 줄어든다. 그런데 최근 젊은 사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한다. 전문가 우려를 무시하고 정부가 강행한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모으고 대출을 활용해 8000만원짜리 소형 전세를 구한 직원은 최근 2억원으로 전세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아 결국 다시 월세로 밀려났다고 한다.
이 중소기업 사장은 “젊은 사원들의 주택 문제는 개별 중소기업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난지원금으로 25만원씩 쥐여줘 봐야 푼돈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나서면 청년들의 주택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이랬다. 개별 중소기업으로선 불가능하지만, 중소기업 여럿을 모아 공동 주거시설을 운영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매입이나 출연으로 땅을 제공하면 건축 비용은 중소기업이 댈 수 있을 것이란 아이디어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도대체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답답해졌다. 중소기업 사장이 말한 것처럼 25만원은 쥐여줘 봐야 푼돈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돈은 청년들의 미래까지 빼앗는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으로 지금까지 뿌린 돈은 50조원에 달한다. 이 돈이면 중소기업 사장이 말한 청년 주거시설을 얼마나 많이 지을 수 있을까. 주거비 부담이 힘겨운 MZ세대 청년 상당수가 이용할 수 있는 기숙사나 원룸 주택시설을 상당량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고무줄처럼 대상자가 늘어난 재난지원금 지급은 청년들의 미래 희망까지 빼앗고야 말았다. 이러니 MZ세대가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들고 기성세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싶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거듭된 주택정책 실패를 땜질하려고 대출 규제까지 강화하면서 내 집 마련의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놓고 있다. 최근 한 비정규직 청년이 “집은 엄두도 못 낸다”면서 그 대신 1억원짜리 외제차를 샀다는 소식은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현재 집권세력인 586 정치인을 포함한 기성세대는 과거 자신들의 청년시절을 돌아보라. 두 자릿수 예금금리 시절에 사회에 진출하면서 저축만 해도 종잣돈을 모을 수 있었다. 언덕배기 다세대 주택에서 출발해도 청약통장을 활용하거나 대출을 받으면 40대 초반쯤 소형 아파트라도 한 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아끼고 저축하며 전셋집 옮겨다니느라 고생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아예 주택 마련 사다리가 끊긴 MZ세대의 희망 상실에 비할 바가 되겠는가.
혹여 어느 대선 후보가 이 글을 읽는다면 공약에 강서구 중소기업 사장의 아이디어를 부디 검토해 보기 바란다. 돈 뿌리는 포퓰리즘을 지속할 만한 여건도 아니지 않나. 정부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내년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어서고 경제 규모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를 돌파한다. 올해 태어난 아이는 18세가 되면 국가채무 1억원을 짊어진다. 청년들이 포퓰리즘에 질식하고 있는 것이다. 더는 청년에게 미래의 희망을 훔치지 마라. 청년이 희망을 잃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