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실전 같은 모의연습, 북핵 억제·대응에 최선책
한·미 연합훈련이 중요한 이유
군인에게 교육·훈련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자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권한이다. 어떤 경우에도 논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군사 교육·훈련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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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무기와 전술 평가…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과학적 훈련
여러 나라가 참가 희망하지만 속성상 일부 우방국 참관만 허용
미국 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한다는 사실 자체로 북한 도발 억제
북핵 위협 날로 커져…연합훈련 축소·연기는 안보 허무는 실책
」
그런데도 정치적 논란 속에 대규모 야외기동훈련(FTX)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최근 폐지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할까? 한·미 연합훈련, 나아가 군사 교육·훈련을 중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군사훈련
한·미 연합훈련은 훈련에 참여하는 미국 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한다는 자체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합훈련이 갖는 잠재적 파괴력이다. 실제 북한은 연합훈련을 두려워한다. 연합훈련체계가 가지는 과학적이고 치밀한 속성 때문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크게 연합지휘소연습(CPX)과 야외기동훈련(FTX)으로 구성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사 훈련으로 실전성과 성과 측면에서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명품 훈련이다. 그래서 여러 나라가 참가를 희망하나 속성상 일부 우방국의 참관만 허용할 뿐이다.
이 훈련은 미국도 전쟁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술을 분석할 중요한 기회로 평가한다. 준비에서 결과 분석까지 그야말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최신 기법으로 진행된다. 북한으로서는 경제적·기술적 이유 등으로 엄두도 낼 수 없는 훈련이다.
1995년 설치돼 30여 명의 분석관으로 구성된 연합연습실(CBSC)은 훈련 2년 전부터 정밀 분석을 통해 훈련 지침을 작성한다. 여기에는 적용할 작전계획과 무기체계, 전장 환경 등이 포함된다. 대항군은 예상되는 북한의 전쟁 계획과 군사 능력을 적용한다. 훈련 전 세미나, 사전 연습 등을 통해 훈련 계획을 검증하며, 깊이 있는 사후 분석으로 교훈을 도출한다.
비록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연습이지만, 실전처럼 진행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작전계획과 무기체계가 보완된다. 여기에 연습 결과를 검증할 야외기동훈련까지 시행하면 더할 나위 없다.
앞으로의 훈련은 가장 큰 위협인 북한 핵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 핵 위협을 실전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한·미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다. 이는 천신만고 끝에 핵 공격력을 확보한 북한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 될 것이다. 북한이 연합훈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합참의장 시절, 독자적인 연습훈련체계 확보를 위해 합동전쟁연습센터(JWSC)를 설치했다. 하드웨어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이를 운용할 전문가가 부족했다. 오랜 세월 미국이 훈련을 주도하는 바람에 정작 우리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 못했다. 지금 수준의 훈련을 하려면 전문 인력 양성에 10년가량 걸린다. 따라서 어떻게든 미국과의 지속적인 연합훈련을 통해 그들의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
2차 대전 준비한 루스벨트의 결단
실전적 훈련이 군 작전과 군사력 건설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국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년 초 미국은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고립주의를 택해 유럽의 전쟁 지역에 뛰어들 뜻이 없었고 군사 능력도 형편없었다.
당시 미 육군은 예비역 포함 50만여 명의 병력으로 세계 18위였으나,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독일은 무려 680만여 명의 현역을 첨단 장비로 훈련해 막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군 수뇌부는 중립을 지키면 전쟁에 말려들 일이 절대 없다며 현실을 외면했다.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꿰뚫어 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 준비를 선언했다. 준비 과정에서 뜻을 달리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군 수뇌부를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심지어 육군 수뇌부는 탱크 중심의 기갑부대보다 말을 이용한 기병 부대를 고집할 정도였다. 막대한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고 군 수뇌부의 의식 개혁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루스벨트는 1940년 5월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을 지시했다.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를 잇는 대평원에서 시행된 이 훈련에는 7만여 명의 병력과 3만5000여 마리의 말, 수백 대의 탱크·항공기가 동원됐다. 독일식 기갑부대 위주의 홍군과 기병 부대 위주의 청군 간 모의 공방 훈련이었다.
9개월에 걸친 훈련 결과 청·홍군 모두 일사불란한 지휘가 되지 않았다.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지 못한 장병 3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이 다쳤다. 미군의 전투 장비와 전술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술, 강인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내에 군사 개혁을 위한 공감대가 한순간에 형성됐다.
덕분에 미국은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를 아우르는 군사 강국이 됐다. 이처럼 실전적 기동훈련은 국방 태세 확립을 위한 결정적 요소다. 주먹구구식 병정놀이 같은 훈련을 통해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다. 그래서 과학적인 체계를 통해 준비·시행되는 한·미 연합기동훈련은 지속해야 한다.
훈련에 임하는 장병의 정신 자세와 대적관(對敵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호주의 사례가 있다. 필자는 2012년 5월 레이 그릭스 호주 해군 참모총장을 접견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방문 목적을 물었더니 호주 해군 장병의 교육·훈련을 위한 동기 부여 방안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호주 해군엔 마땅한 대적관이 형성되지 않아 교육·훈련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릭스 총장 자신도 훈련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늘 적과 조우하는 한국에 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어떻게 보면 웃을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마땅한 적을 상정할 수 없는 총장의 고민이 이해됐다. 그는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적·훈련·기강 없는 ‘3무 군대’ 비판
그런데 24시간 적과 대치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확고한 대적관이 확립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적관 확립을 위한 정신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경계 실패, 군 기강 사건들을 보면 우리의 국방 태세가 걱정이다. 심지어 우리 군이 적·훈련·기강이 없는 ‘3무(無) 군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할 군인에게 합당한 대적관, 군인 정신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첨단 무기도 소용이 없다.
군인에겐 사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장병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근무 여건 개선은 사기의 극히 일부다. 진정한 사기는 험난한 전투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는 실전과 같은 강인한 훈련을 통해서만 생긴다. 장병에게 교육·훈련은 의무이자 권한이라는 이유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담화가 기억난다. “미국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자국민의 의지가 없이 외부의 힘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군사 교육·훈련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를 하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는 현시점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연습과 훈련을 강화해 북한을 더욱 두렵게 만들어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품 훈련을 왜 스스로 거부하는가? 더욱 가치 있는 명품으로 만들어 국가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훈련에서 흘린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는 피 한 방울과 같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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