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차 산업혁명 시대, 왜 융합적 사유인가

2021. 10. 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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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네트워크 기술, 생명공학 등 무형의 소프트파워가 상호작용해 이뤄내는 혁신을 의미한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 과연 혁명인지, 단순한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그래도 모두 동의하는 것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과거처럼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출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이 상호 작용하면서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정보통신기술의 결합으로 이뤄진 융합시대라 부르고, 지식사회에서는 교육과 연구 나아가 학문 간 융합을 독려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융합은 전문가를 더욱 일방적 지식에만 머물게 한다는 데 있다. 기술 융합이 사회를 더 깊은 파편적 분과화로 이끌다 보니 자칫 맹목적 전문화를 낳을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명목적 소통은 있으나 참된 소통이 점점 없어지는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식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데도 한국사회가 지식의 분과화로 실질적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학은 이 지점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 전문지식·기술 잇는 소통이 핵심
대학도 인문·과학 융합교육 필요

지식은 크게 코드화된(Coded) 지식과 암묵적(Tacit) 지식으로 나뉜다. 코드화된 지식은 논문·교과서·단행본 등 교과 교육을 통해서 습득되고, 인터넷·컴퓨터에 저장될 수 있다. 암묵적 지식(암묵지)은 코드화된 지식의 의미론적 토대가 되면서 분야별 지식의 상호연결을 형성하는 배경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이 수반되면 세련된 지식 문화를 기대할 수 있다.

양질의 암묵지에 뿌리 내린 전문 지식은 다른 분야와 소통의 여지를 넓히지만, 저급한 암묵지의 토대 위에서는 무지로 인해 소통 불가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전문화된 지식 사이를 잇는 소통 언어를 ‘메타 언어(Metalanguage)’라고 하며, 저급한 암묵지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양심적 지식이 아닌 음흉한 권력의 소유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때 시류와 영합하는 대중주의가 창궐한다.

권력의 조종을 받는 대중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사회, 여기에 융합적 사유와 소통 능력을 결여한 전문가들이 가세하면 대학을 비롯한 지식기반 사회에는 위험한 징후들로 넘쳐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은 융합적 사유에 주목해야 한다. 융합적 사유란 소통을 통해 다른 분야의 존재들과 비교하면서 자기 분야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방법론적 사고다. 이때 전문가는 다른 분야와 소통의 가능성을 열고 대중주의를 약화하고 제어할 수 있다.

과연 우리 대학은 융합적 사유를 어떻게 독려할 것인가. 첫째, 융합적 사유의 밑바탕에 윤리성을 견지해야 한다. 윤리성에 근간을 둔 융합적 사유는 비록 이익을 추구할 때라도 사적 이익에만 경도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한 공통자산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둘째, 자연과학·공학·인문학과 융합 교육을 통한 인문정신의 활성화다. 인문정신이 없는 과학기술적 사유와 과학의 논리를 결여한 인문적 사유는 인간 삶과 생태를 모호한 독단성과 맹목적 진보에 매몰시킬 위험이 크다.

셋째, 참된 전공 교육은 한 과목을 교육하면서 다른 과목의 논리적 사유를 관찰할 기회를 제공할 때 가능하다. 이때 학생은 스스로 다른 전공과 어느 정도 비교하면서 융합하는 사유 능력을 배울 수 있고 자율적으로 자기 학습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융합형 인재 양성의 시작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하는 대학사회는 융합 교육과 융합 연구를 위한 최적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과거처럼 수직적·분과적 사고에서 벗어나 윤리성·창의성·논리성을 갖춘 인문정신 위에서 진정한 융합적 사유를 더해가는 담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유경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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