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김만배는 이발소에 갔을까
‘2019년 2월 10여년 만에 대법원 기자실 떠남. 이후 10여 차례 대법원 방문. 타사 법조팀장들과 만남 및 구내 이발소 방문 목적. 권순일 대법관과는 3~4차례 인사차 만남. 재판 관련 언급 없음.’
2019년 7월 16일~지난해 8월 21일 권순일 대법관실을 8차례 찾았다는 기록이 공개되자 화천대유 김만배씨가 내놓은 해명이다. 대법원 기자실을 제집처럼 여겼고 대법원에서 2~3년 근무하는 파견 판사들마저 손님처럼 맞았던 김씨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권 전 대법관의 행적과 캐릭터 때문이다.
법원 출입기자였던 2015년 7월 어느 날. 야근하러 귀사했을 때 막 통화를 마친 사회부장은 “권순일인데, ‘주심 사건에서 정책법원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드높일 엄청난 판결을 한다’고 하네”라고 말했다. 같은 달 23일 나온 ‘엄청난 판결’은 변호인과 의뢰인간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반(反)사회질서 행위’여서 무효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판결의 파장도 컸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부장과 그의 통화 장면이었다. “형” “동생” 사이라도 대법관 6년 만큼은 거리를 두는 게 불문율인 법조 취재 풍토에서 대법관의 판결 홍보는 기행(奇行)에 가깝다.
해석은 가능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거쳐 대법관으로 직행한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핵심 참모로 불렸다. ‘엄청난 판결’도 일반적 상고사건을 처리할 상고법원을 신설하고 대법원은 미 연방대법원 같은 정책법원으로 전환하겠다던 양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활성화를 공언할 때에 맞춰 나왔다. 그는 미제 사건의 늪을 헤치고 임기 첫해 주심 사건 5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렸다.
권 전 대법관의 발자취가 물음표가 된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다. ‘양승태 법원’을 갈아엎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12월 그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한 것에 첫 물음표가 붙었다. 이후 윤석열표 ‘사법농단’ 수사에서 그는 ‘법관 블랙리스트’의 공범으로 지목됐지만 기소를 면했다. 법조계엔 그가 “말을 갈아탔다”는 말이 파다했다. 우후죽순 창당이 줄 잇던 지난해 총선 직전 ‘권순일 선관위’는 ‘국민당’‘비례자유한국당’ 등은 당명으로 쓸 수 없지만 ‘더불어시민당’은 괜찮다는 결정으로 논란을 불렀다. 지난해 9월 대법관 임기만료땐 중앙선관위원장 자리도 함께 비우던 관행을 깨고 인사권을 행사한 뒤 ‘지각’ 퇴임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 전원합의 과정도 ‘포스트 김명수’로 거론되던 권 전 대법관에겐 김씨와의 만남과 무관한, 말을 갈아타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 그래도 그 두 사람이라서 궁금하다. 김씨는 이발소에 갔을까. 권 전 대법관이 받은 건 월 1500만원이 다일까. 인사만 나눴을까.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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