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스값 7년래 최고 'E플레이션' 위기
세계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석탄과 석유·천연가스값은 각각 13년과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과 이상기후 등으로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최근 심각한 전력난을 겪는 중국이 ‘사생 결단’식 에너지 확보에 나서면서 가격 급등에 기름을 부었다. 직격탄을 맞은 건 인도다. 세계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공급 쇼크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 가격(10월물 기준)은 t당 240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세 배가량 오른 것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다.
국제유가도 치솟고 있다. 서부텍사스유(WTI)는 이날 배럴당 77.62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2% 이상 올랐다. 연초와 비교하면 60.45% 오른 것으로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을 포함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증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불거진 탓이 크다.
천연가스도 이날 100만 BTU(열량 단위) 당 5.7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연초(2.58달러)와 비교하면 123.6% 급등했다. 역시 2014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 급상승에 불을 붙은 건 중국의 사재기다.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다. 당장 늘리기 힘든 국내 석탄 생산을 대체하려 인도네시아, 러시아, 몽골 등에서 수입량을 늘리고 있다. 이에 인도네시아 석탄을 주로 공급받았던 세계 2위 석탄 수입국인 인도에 비상이 걸렸다. 인도 경제지 민트는 지난 1일 기준 인도 화력 발전소 135곳 중 72곳의 석탄 재고가 사흘 치도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석유화공과 중국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국영기업은 겨울용 천연가스 재고 확보를 위해 구매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 컨설팅 업체 개스비스타의 레슬리 팔티 구스만 대표는 “중국의 재고 쌓기는 높은 가스·전기 가격을 감당해야 할 유럽에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기름을 붓긴 했지만, 에너지 대란은 구조적인 문제다. 에너지 수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했다. 코로나19 이후 침체했던 세계 경제가 회복하며 산업 생산이 늘었고, 한파와 폭염 등 이상기후로 냉난방 수요도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 팬데믹으로 붕괴했던 에너지 생산·공급망이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탓이다. 탄소중립(실질 탄소 배출량을 0으로 줄임)을 목표로 내건 각국도 화석연료 생산에 힘을 쏟지 않았다. 녹색 바람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의 역설이다.
실제로 중국의 석탄 부족 현상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060년 탄소중립 실현” 목표를 위해 당국이 국내 석탄생산을 제한하며 발생했다. 천연가스 대란 역시 이상기후에 풍력 발전량이 떨어지자 유럽 각국이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며 생겼다.
원유도 마찬가지다.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OPEC+가 국제적인 증산 압력에도 생산 규모를 동결한 건 현실적으로 증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금융권이 석유 투자를 줄이는 추세에 따라 석유 생산 및 보관 시설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겨울이 닥치면서 에너지 수요가 더 늘어날 거란 점이다. 씨티그룹은 겨울철 아시아와 유럽 일대 천연가스 가격이 지금보다 4배 비싸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인플레이션+경기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외환 전략 이사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산업 생산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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