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 선수-심판 겸직 안 돼" 한목소리
프로기사 400명(정확히는 391명) 시대. 이들 중 ‘선수’라고 불릴 수 있는 기사는 100명 안팎일 것이다. 선수란 바둑 시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사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400명 모두 선수다.
바둑전문지 ‘월간바둑’이 세 가지 분리 안을 놓고 두 번째 끝장토론을 벌였다. 세 가지 분리란 “프로 400명을 토너먼트 프로와 보급 프로로 분리하자”, “프로기사는 선수, 심판, TV해설, 감독(3대 리그 감독, 국가대표 감독) 등을 겸직하고 있는데 이를 분리하자”, “프로 400명을 남자, 여자, 시니어로 분리하자”.
지난번엔 ‘프로제도’라는 큰 주제를 놓고 토론했는데 바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인지라 범위가 너무 방대한 탓에 결론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바둑계의 금기에 도전했다는 의미가 컸다. “이대로는 다 망한다”라는 극단적인 목소리조차 인정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또 하나, 민감한 주제에 프로기사가 앞장섰다는 점도 70여년 한국기원 역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외부인사는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프로기사의 문제는 프로기사가 해결해야 한다. 한데 프로기사는 10대부터 80대까지 함께 모여 있다. 세대 차이, 남녀 차이는 물론이고 실력 차이, 빈부 차이 등이 존재하여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기 힘들다. 프로기사는 매년 17명이 늘어나는데 은퇴는 거의 없으니 곧 500명이 될 것이다.
열성 바둑팬이라 하더라도 이런 속내는 알기 어렵다. 더구나 대회는 누가 참가하고 돈은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게 왜 뜨거운 이슈인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번 토론에 참가한 4명의 프로기사도 의견이 엇갈렸다. TV 유명 해설자인 안형준(32) 5단은 “심플하게 대국료가 없으면 토너먼트 기사와 보급 기사가 자연히 나눠진다”며 대국료를 없애고 상금제로 가자고 주장했다. 58세의 시니어 기사 김성래 6단은 “상금제냐, 대국료냐 하는 논쟁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며 같은 선상에서 프로의 분리도 불가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두 딸이 모두 프로기사다.
이현욱 9단(41)은 기사회 대의원으로 ‘기전개혁TF’를 발족해 경쟁 위주의 기전개혁을 앞장서 주창해왔다. 이날도 기조 발제를 통해 “프로 400명이 모두 선수이고 남자, 여자, 시니어에다 심지어 감독, 해설, 심판까지 모두 선수가 하다 보니 몇 날 며칠 회의해도 결론이 안 난다. 그러므로 일단 이들의 분리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자기사 문도원(30) 3단은 완곡하게 대국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번 토론도 이렇게 ‘문제 제기’로 끝나나 싶었는데 의외의 합의가 나타났다. 사실 이 대목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는데 서론이 길었다. “선수가 심판을 겸해서는 안 된다”고 만장일치 합의를 본 것이다. 스포츠에서 선수가 심판을 맡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프로바둑은 심판 전원이 프로기사다.
선수가 감독이나 TV해설까지 하는 게 옳으냐, 남자·여자·시니어를 분리해야 하느냐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답이 없다. 그런데 선수와 심판 분리 문제에서만은 의견이 같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선수가 심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밖에서 보면 프로제도 같은 거창한 것을 떠나 이토록 당연한 것을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깜짝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개혁은 멀고 먼 길이다. 이대로는 다 망한다고는 하지만 뭔가를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심판-선수 분리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 하나부터 바꾼다면 나머지 99가지도 천천히 변할 것이다.
‘월간바둑’은 한국기원 기관지이고 50여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잡지다. 많은 명사들이 이 잡지를 거쳐 갔다. 이번 토론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모처럼 의견을 모은 선수·심판 분리부터 성과를 보기 바란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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