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친구들이 '세상의 끝'에서 잡은 두 마리 토끼
[김형욱 기자]
▲ 영화 <종착역> 포스터.? |
ⓒ 필름다빈 |
중학교 1학년 14살 동갑내기 친구들 시연, 연우, 소정, 송희는 사진 동아리 '빛나리' 부원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동아리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동아리 이름을 교감 선생님의 빛나는 머리에서 따 왔다고 하고, 활동다운 활동은 하지 않고 그저 노닥거리며 시간을 때운다. 여름방학이 되자 동아리 선생님이 제안 하나를 한다.
'세상의 끝'을 주제로 한 사진 공모전이 있는데 여름방학 때 세상의 끝을 사진으로 찍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말이다. 네 친구들은 모여서 왜 이런 과제를 내주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공유하기도 하지만, 과제는 해야 하기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지? 언제 가지? 뭘 찍지? 어떻게 찍지? 그러다가 시연이 1호선 종착역인 신창역으로 가보자고 제안해 함께 떠난다.
지하철로만 2시간가량 걸리는 길을 떠난 네 친구들, 세상의 끝인 신창역에 도착한다. 세상의 끝엔 뭐가 있을까? 일단 이것저것 찍어 보고, 찍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기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함께라서 웃을 수 있고 힘도 난다. 그들은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 시기
14살이라는 나이, 중학생이 되며 이전까지의 '아동기' '어린이'라는 타이틀을 던져 버리고 '청소년'의 길로 들어선다. 여러 면에서 어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도 아니기에, 과도기적인 측면이 다분하다.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 시기와 다음 챕터가 시작되는 시기가 맞물려 있기도 하다.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어려운 시기.
영화 <종착역>은 바로 그런 나이인 14살의 동갑내기 네 친구가 '세상의 끝'을 찾아가 사진으로 남겨 오는 과제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당한 함의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영어 제목을 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짧은 휴가'라는 뜻의 < short vacation >, 한글 제목이 한 챕터의 마지막을 얘기하려는가 싶은 반면 영어 제목은 다음 챕터를 시작하기 전 갖는 짧은 휴가 같은 느낌이다.
<흩어진 밤> <남매의 여름밤> <에듀케이션> <갈매기> 등으로 최근 한국 영화 신예 발굴단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출신 91년생 동갑내기 권민표, 서한솔 공동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베를린 영화제, 부산국제 영화제, 타이베이 영화제 등 굵직한 영화제들에 초청되는 등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고작 14살, 세상의 끝으로
세상의 끝을 사진으로 찍어 오라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해남 땅끝 마을로 가야 할까? 북극점이나 남극점으로 가야 할까? 네 친구들처럼 종착역으로 가야 할까? 14살 친구들의 경험과 생각과 환경이 버무러진 결과물은 1호선의 종착역인 신창역이다. 돌이켜 보면, 종착역을 향한 로망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딘가의, 무엇인가의 끝으로 가면 남는 건 돌아오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정이라는 건, 여행이라는 건 반드시 뭔가를 남기기 마련이다. 네 친구들은 귀찮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여정의 끝에서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을 다양한 일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작' 14살 나이에 말이다.
시연이는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고 소정은 연우와 송희가 둘만 좀 더 친해 보여서 고민이 있었는데, 서로 친하게 되어 좋다고 한다. 연우는 학원에서 1학년 과목을 완전히 떼다시피 하고 2학년 과목을 미리 배우고 있는데, 은근히 스트레스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네 친구들 모두 한데 모여 남자친구 이야기도 하고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도 나눈다.
그들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아니, 네 친구가 둘러앉아 하는 이야기를 화면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공간도 다르지만 전혀 바뀌지 않다시피 한 감성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했다. OST 없이 현장음으로 오디오를 채우고 움직임 없이 롱 쇼트로 네 친구들을 오롯이 채운 방식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기법으로 읽어도 문학적으로 읽어도 좋다
8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영화를 꽉 채우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느 하나 도드라지지도 빠지지도 않는 네 주인공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제아무리 30대의 젊은 나이라도 두 남성일 뿐인 감독들의 시선과 관점이 오롯이 투영된 14살 네 여자친구들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이 애드리브다.
장편 영화 경험이 전무한 친구들을 섭외해 애드리브만으로 숏을 꾸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서사를 이어가게끔 한 것이다. 날 것의 낯설기까지 한 느낌이 시종일관 물씬 풍기는데, 그래서 14살의 시선과 관점이 묻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 중간중간 네 친구들이 필름 카메라로 대충 찍은 듯한 사진이 '잠시 멈춤'한 듯 화면을 꽉 채우는데 그 모습이야말로 14살 네 친구들이 본 '세상의 끝'인 것이다. 관객은 그들을 보고, 그들은 세상의 끝을 보게 된다.
영화를 영화기법 상으로 들여다봐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영화를 서사나 주제같이 문학적으로 들여다봐도 역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뭉클해지는 순간과 '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 힘들 텐데, 이 작품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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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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