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다 놀란 이유.. 아, 이 사람들 신들렸다!

윤일희 2021. 10. 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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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TBC <풍류대장> 1화

[윤일희 기자]

 JTBC <풍류대장>의 한 장면.
ⓒ JTBC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며 이렇게 몰입하게 하다니. 같이 시청하던 딸애는 과몰입으로 "기절할 것 같다"고 했다. JTBC <풍류대장> 1편의 시청후감이다.

국악에 과문하다 못해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으로서 이런 말 하기 정말 면구스럽지만,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해야지 어쩌겠는가. 잘해도 이만저만 잘하는 게 아니라서, 감히 평가를 할 수 없다. 심사 위원으로 나온 낯익은 뮤지션들의 평가조차 심드렁하게 들릴 정도로 참가자 모두 세월을 벼리고 벼린 역량이 발군이었다.

무대를 향한 그들의 간절함과 진심 또한 여지없이 전이되었다. 필자를 비롯해 이토록 훌륭한 뮤지션들을 홀대해온 모두는 단언하건대,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거듭, 이토록 훌륭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한 모든 참가들에게 감사와 존경과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삶은 막막하고 춥고 배고프고 앞이 보이질 않아"
 

참가자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훌륭했지만, 이들 중 특별히 마음을 잡아 끈(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거의 신들린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굉장한 에너지를 분출해 그 에너지에 거의 숨을 못 쉴 정도였다), 굉장한 노래 실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혼절시키다시피 한 국악인 최예림의 공연을 언급해 보고 싶다.

그가 선택한 노래는 에미넴의 'lose yourself'였다. 이 노래가 힙합이라는 소개에 깜짝 놀랐다. 힙합을 국악으로 변주한다고? 그런데 웬걸, 그는 'lose yourself'를 자신의 국악성과 연결시켜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원곡을 훼손시키지 않는 오묘한 조합으로 너무나 충격적인 굉장한 무대를 선사했다. 최예림이 'lose yourself'를 부른다고 하니, 같이 시청하던 딸애가 너무 놀라하며, "아니 저 노래를 어떻게 국악으로 부르지?"했다. 물론 기우였다.

그나저나 애미넴이 누군지도 모르고 최예림의 'lose yourself'를 들은 나는, 에미넴이구 뭐구, 그의 음악성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최예림의 노래가 끝난 후 그의 천재성에 강타 당해 정신이 나갔던 딸애가 조금 진정한 후 전한 정보로는, 에미넴은 상당히 유명한 힙합 가수였다.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지만 여튼, 에미넴이 최예림의 'lose yourself'를 들었다면 분명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최예림은 자신을 '생계형 국악인'이라 소개하며 아무리 열심히 공연해도(이조차 코로나 시국으로 불가능하지만), '한 달 80만 원'을 벌기 어렵다고 했다. 이도 마음이 아팠는데 카메라가 비춘 또 다른 참가자는, "80만 원이면 많이 버는데"라고 속삭였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무대에서 이토록 반짝이는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내려오면 마법이 풀린 후의 신데렐라처럼 각박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빠듯한 삶을 반추하면, 최예림이 가사를 직접 써 선보인 'lose yourself'가 왜 그토록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지 이해가 된다. "...무대에 설 곳 없는 현실로 돌아오고 자존감 무너지고 삶은 막막하고 춥고 배고프고 앞이 보이질 않아 갈 길 잃어 불안한 생활의 연속..." 이 무대에 서기 전 그가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 왔던 공연 기록은 그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이다지도 우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과장이나 포장 없이, 국악이라는 외롭고 험난한 길을 홀로 걸어온 사람이 그럼에도 결코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하는 웅변이기에, 그토록 강렬하고 날카롭게 청자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영혼의 점자를 새겨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노래 도중 일시정지 버튼이 눌린 듯 노래를 멈췄을 때, 청자는 같이 숨을 멈추고 기도하게 된다. "안 돼요. 멈추지 마요. 다시 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다시 숨을 고르고 눈을 부릅뜬 그녀가 노래를 이어 간다. 기도가 통했다.

신들의 향연, 옥에 티가 있다

훌륭한 국악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기량을 뽐내고 격려하는 무대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하다. 각자의 길을 오랜 시간 뚜벅뚜벅 걸어 온 걸출한 국안인들을 발굴하고 소개해, 이들의 소망처럼 한국인들이 국악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기획 의도에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풍류대장>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음악 경연 대회의 속성을 탈각하지 않은 기획은 이 뛰어난 국악인들의 향연을 프로그램 시작부터 '소리꾼들의 전쟁이 시작된다'라며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 있다. 이미 이런 식의 서바이벌 경쟁 구도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기에 재론하지 않겠다. 이미 온 나라를 혹은 한국을 넘어 해외로 나가 실력을 인정받은 탁월한 국악인들의 음악을 그저 듣고 환호하고 즐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과한 경합으로 이들의 재능을 시험하는 대신, 한 번 신바람나게 놀아 볼 판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참가자들의 공연을 보고 낯익은 뮤지션들이 심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뭔가 개운치 않은 감정이 생겨난다. 거의 모든 취향의 판단이 그렇지만, 음악의 판정 역시 그 판정을 내리는 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 이 분야가 국악이라는 낯선 장르이고 보면, 대부분 팝 음악을 하는 심사위원들의 귀가 꽤 공정하고 객관적이라 담보할 수 없다.

게다 심사위원인 송가인이 학연과 인연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00대 아이비리그 아무나 못 가요"라 거론하고, 동료 심사위원과 진행자도 이를 같이 부추기며 언급한다. 또한 한 참가자의 출신 대학인 S대를 언급하며 "공부 잘해야 가는 대학"이라고 서슴없이 발언한다. 평등해야 할 무대를 학벌로 줄 세워 관람시키려는 실격 심사는 참가한 아티스트들의 기량에 비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글로벌 스타 '방탄'에게는 물론 감히 묻지도 못하겠지만, 뛰어난 아티스트에게 학벌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프로그램의 세심하지 못함은 다른 면에서도 불쑥 튀어나왔다.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음에도(밝히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유독 여성 참가자 두 명만이 마치 관등성명을 대듯 자신의 나이를 또박 또박 밝히고 있었다. 두 명 모두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이것이 나이를 밝혀야 하는 이유가 되는가?

무속인 참가자(윤대만)가 나왔을 때도 불편함은 이어졌다. 신 내림을 받았다는 그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누구나 알듯이 신 내림은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어떤 이유에선지 신 내림을 받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한 무속인이 당당히 나와 굿 역시 민요에 기반하고 있는 국악의 한 가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노래가 이어졌고, 무속인인 아티스트가 손에 무속인의 상징인 방울을 들고 간간이 추임새를 주듯 흔들며, 어찌 들으면 낮게 곡을 하듯 내는 노래는, 모든 상처받은 사람의 영혼을 초혼해 위로하는 '무당'의 본령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처연한 노래가 끝났을 때 관객은 문득, 멍든 영혼이 씻겨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매우 인상적인 무대였다.

그러나, 그가 초혼한 영혼을 다시 자신의 방울로 거두어들이듯 노래를 마무리했을 때, 불쑥 튀어나온 심사위원의 "무속인이 어디 가서 이런 무대에 서보겠어요"라는 피드백은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심사위원 송가인이 자신의 어머니가 진도 씻김굿 전승자임을 밝히며 한 이 발언은 물론, 굿이라는 장르가 국악으로 떳떳이 편입되지 못하는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당사자성을 확보한 격려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무속인의 굿을 예술로 여기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고 그럼에도 무대에 선 무속인의 공연을 위로하고 격려할 작정이었다면, 그의 노고를 치하할 아름다운 말은 넘치게 많지 않은가.

옥에 티가 거슬리지만, <풍류대장>의 참가자들과 이들이 펼칠 노래 신들의 향연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격한 마음으로 팬이 된 사람으로서 팬심을 배반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런 팬심에 부합하도록, 프로그램 제작진도 무분별한 연출로 참가자들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이어지는 불굴의 노력을 퇴색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끝으로, 비록 참가자 누군가 심사에서 떨어지더라도 부디 승패에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당신들의 재능이 함부로 평가당하도록 허락하지 말기를 기도한다. 당신들의 무대를 본 모두가 이미 당신들의 노래와 음악에 홀딱 반했다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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