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앞으로 다가온 '마이데이터' 사업 삐걱..정보 제공 역차별 논란 '무늬만 혁신' 우려
금융권의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마이데이터 산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을 둘러싸고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출범 일정부터 정보 제공 범위 등을 놓고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022년 1월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혁신은커녕 업계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잖다.
금융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마이데이터 사업은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통제하며 이런 정보를 신용이나 자산관리 등에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마이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각종 기관과 기업에 분산돼 있는 자신의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고, 기업에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 맞춤 상품이나 서비스를 추천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개인은 자신의 정보를 기업에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기업은 이를 광고에 활용하는 등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이데이터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소비자는 금융 회사, 통신사 등에 자신의 입출금·예적금 내역, 카드 사용 내역, 통신료 납부 내역 등 신용 정보를 마이데이터 업체에 전달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 업체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재무 현황을 분석하고, 자산관리 방안 등을 조언하게 된다. 개인의 모든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 새로 열리는 셈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역차별 주장
▷은행의 고객 데이터만 공개하는 건 불평등
마이데이터 사업 시행까지는 불과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던 마찰음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적요 정보’ 공개 여부다. 적요 정보는 금융 거래 수취인과 송금인의 이름·메모 등이 기록된 정보로, 금융권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돈을 보낼 때 적요 정보를 제공하면 A 통장에서 B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데이터 정보 제공 내역에서 적요 정보가 제외되면, 송금·수취인 이름이 ‘알 수 없음에게 5만원 송금’ 식으로 표기된다.
마이데이터 사업과 관련해 은행권은 그동안 개인 정보 오·남용 등을 이유로 적요 정보 공개에 반대해 왔다. 반면 빅테크·핀테크업계는 제대로 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위해서는 사용자가 은행 계좌에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썼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7월 마이데이터 사업자 간에는 적요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유하도록 결정했다.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고 사업 효과를 높이겠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반발을 의식해 금융당국은 적요 정보는 소비자 본인 조회, 본인에 대한 분석 서비스 제공 목적에 한정해 제공하고 외부 제공 금지를 명시하도록 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금융사는 수십 년간 쌓아온 고객의 모든 데이터를 공개해야 하는 반면 빅테크·핀테크 기업이 보유한 비금융 정보는 쉽게 받아볼 수 없다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은행 적요 정보는 민감한 ‘개인 정보’라기보다 공유가 가능한 ‘신용 정보’로 간주되지만, 인터넷 쇼핑몰 등이 보유한 소비자 구매 내역은 개인 정보로서의 성격이 강조돼 구체적인 구매 품목이 아닌 ‘의류·음식’ 등 12개 대분류 형태로만 은행에 제공된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계열의 마이데이터 플랫폼 사용자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금융·통신·쇼핑 등의 정보를 가져오는 데 동의하면, 은행은 이 개인의 ‘○○○ 의원 후원 계좌’ 송금 기록이나 ‘○○ 질병 치료비 지출’ 등의 개인적 메모까지도 빅테크 업체에 넘겨줘야 한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네이버파이낸셜이나 카카오페이, 쿠팡 등 오픈마켓 계열사가 있는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경우 통합 조회를 통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은행과 비교해 훨씬 많고 상세할 수밖에 없다. 이는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에서도 훨씬 유리하게 작용해 불평등한 경쟁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쪽짜리 정보 제공에 실효성 저하
▷‘선택 동의’ ‘주 1회 전송’으로는 경쟁 어려워
그렇다고 마이데이터 사업에 참여하는 빅테크·핀테크 업체들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마이데이터 운영 가이드라인에서 적요 정보, 가맹점명 같은 상세 정보는 ‘선택 동의’를 통해서만 정보를 제공하게 하고, 정기 전송 요구도 주 1회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이런 반쪽짜리 정보만으로는 오히려 지금보다 자산관리 서비스가 후퇴해 소비자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행 마이데이터 사업 가이드라인에서는 ‘제3자 정보와 민감 정보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 아래 적요 정보에 대해 사용자가 직접 선택 동의를 한 경우에만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적요 정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선택 동의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사용자가 적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빅테크업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가 제공해온 서비스보다 불편한 과정이 반복되거나 제공되는 정보가 부족할 경우 사용자 이탈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 1회 신용 정보 전송도 빅테크 업체 입장에서는 문제다. 사용자의 금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패턴 분석을 통해 얼마나 잘 컨설팅해주느냐가 마이데이터의 경쟁력을 좌우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받는 정보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실제로 주 1회 신용 정보가 제공된다면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산관리 서비스나 지출 분석 서비스 등은 아예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핀테크 업체 간 신경전이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마이데이터 사업에 뛰어드는 사업자는 계속 늘고 있다. 9월 29일 기준 마이데이터 사업 최종 허가를 받은 업체는 70여개사에 달한다.
최종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둔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는 중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국내 금융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기는커녕 ‘무늬만 혁신’에 그칠 가능성이 적잖아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미 한차례 시행 시기를 늦춘 상황에서 또다시 시행을 연기했다가는 사업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이데이터 사업은 세계 최초로 시행하는 본격적인 금융 데이터 서비스다. 사업이 정상적인 궤도로 안착할 수 있도록 사업자들이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결국에는 금융당국이 두 진영의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8호 (2021.10.06~2021.10.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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