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편집'은 필요없다.. '스우파'의 찐매력

김예지 2021. 10. 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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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의 인기 요인

[김예지 기자]

[기사 수정 : 6일 오전 9시 8분]

댄서들이 이름을 찾았다. 묵묵하게 가수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던 백업의 역할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센터 싸움에 뛰어들었다. Mnet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아래 <스우파>)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리듬을 선물하고 있다. 

여성 댄스 크루 8팀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릿 댄스 크루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서바이벌 예능 <스우파>는 지난 8월 24일 첫 방송 했다. 크루 '프라우드먼', '홀리뱅', '코카N버터', '라치카', 'YGX', '원트', '훅', '웨이비'는 각자 독보적인 댄스 스타일을 선보인다. 퀄리티 높은 퍼포먼스와 더불어 여성들의 야망과 치열한 심리전을 엿볼 수 있는 웰메이드 예능이다.
 
▲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화면 (위) 모니카 (아래) 리정
ⓒ Mnet
 
볼거리가 많은 프로그램인 만큼 회가 갈수록 관심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 화인 5화는 첫 화보다 세 배 뛴 시청률(2.4%)을 기록했다. 또한 Mnet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크루들의 퍼포먼스 영상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 영상들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히트 안무가 리정이 이끄는 YGX의 메가 크루 미션 대중 평가 영상은 10월 4일 기준 588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같은 미션에서 훅은 437만 회, 홀리뱅은 429만 회의 조회 수를 달성, 가장 낮은 관심을 받았던 코카N버터 마저 252만 회를 가뿐히 넘겼다. 댄서들 개개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크게 증가했다. 대한민국에는 이제껏 수많은 서바이벌 예능이 있었다. 그런데 왜 <스우파>는 이토록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색깔이 뚜렷한 8크루

서바이벌 예능인 만큼 기본적으로 크루들의 매력들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만든다. 프라우드먼은 우아함과 강함을 동시에 지녔다. 훅은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에너지를 뽐낸다. 라치카는 퍼포먼스 퀸들이 총집합했고 원트는 화려하고 과감한 느낌을 준다. 홀리뱅은 압도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걸스 힙합 대가이고 코카N버터는 섹시하고 탄탄한 무브를 보여준다. YGX는 똑똑하고 당돌하며 웨이비는 세련미와 절제미가 돋보인다. 8팀의 매력은 본인들을 나타내는 깃발 컬러 만큼이나 선명하다.

섹시한 동작을 주로 할 것이라는 여성 댄서에 관한 선입견을 가볍게 넘고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다. 크럼프부터 비보잉까지 각자 자신 있는 춤 종류도 다르다. 팀과 팀이 경쟁하기도 하지만 특정 댄스를 주특기로 하는 개인과 개인이 맞붙기도 한다. 촘촘한 경쟁 구도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끝없이 자극한다.

댄서는 몸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링도 매회 화제가 된다. 멤버 모두 까무잡잡하게 피부를 태닝하고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는 코카N버터와 달리 훅은 헐렁한 티셔츠와 조거 팬츠 등으로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멤버 각자도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라치카의 가비는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으로 섹시함을 강조하고 웨이비의 노제는 비니와 체인 목걸이 등으로 시크한 매력을 뽐낸다.
 
▲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화면 (위) 가비 (아래) 노제
ⓒ Mnet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는 네 개의 기숙사가 나온다.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후플푸프, 래번클로가 바로 그것이다. 기숙사마다 색깔이 워낙 뚜렷한 덕분에 해리포터 팬들마저도 선호하는 기숙사가 다르다.

<스우파>도 뚜렷한 8팀의 개성이 소위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을 하도록 만든다. 팬들은 댄서들의 예명 유래나 대인관계 등 방송 비하인드를 직접 찾아보고 또 SNS상에 정보를 공유하며 즐거워한다. 팬들이 편집해 올린 짤막한 영상은 <스우파>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팬을 양성한다. 팬심을 자극하는 <스우파> 댄서들의 개성은 프로그램의 더없이 큰 강점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춤 대결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다만 <스우파>는 '국내 최초로' 여성 댄스 크루만을 모아 만든 프로그램인 만큼 아직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등장할 수 있었다. 홀리뱅의 수장 허니제이와 코카N버터 멤버들의 오랜 갈등도 그중 하나다.

허니제이는 원래 코카N버터 멤버들의 스승이었다. 7년간 '퍼플로우'라는 팀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성격 차이로 코카N버터 멤버들이 퍼플로우를 단체로 탈퇴했고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지 약 5년 만에 <스우파>에서 경쟁자로 만났다. 허니제이와 코카N버터의 리더 리헤이는 서로 미안함과 원망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배틀을 벌였다.

놀라운 점은 프리스타일로 진행된 무대에서 이들이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안무를 했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아닌 한 팀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들을 지켜본 댄서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배틀은 제자인 리헤이의 승리로 돌아갔다. 허니제이는 받아들이며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둘은 오랜 시간 포옹을 나눴다. 오랜만에 스승을 다시 만난 코카N버터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허니제이는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춤을 췄지 마주 보고 춘 적이 없었다. 그동안 리헤이가 자기 색깔을 많이 찾은 것 같다"라는 성숙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오랜 갈등은 물론 해소의 과정까지 눈앞에서 본 시청자들은 깊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화면 허니제이와 리헤이가 1대1 배틀을 펼치고 있다
ⓒ Mnet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 채연의 서사도 흥미롭다. 프로그램 첫 화에서 그는 댄서들에게 받은 '노리스펙(No respect)' 카드 6개를 몸에 붙이고 나타났다. 회를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댄서로서 성장한다. 가수 활동을 하며 센터에 서는 것이 익숙할 채연은 댄서들의 백업 댄서가 되는가 하면 연달아 패배했던 1대 1 대결에도 기죽지 않고 춤을 춰 끝내 1승을 따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결국 댄서들도 최선을 다하는 채연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라치카의 피넛은 왁킹의 대가 립제이를 이겨보고자 약자 지목 배틀에서 립제이를 지목한다. 이를 악물고 팔을 휘젓지만 또 한 번의 패배한다. 반면 같은 팀인 라치카 리안은 넘을 수 없는 벽 같던 립제이를 이기고 센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가 하면 '아이키와 아이들'이라는 무시를 받았던 신생 크루 훅이 회가 갈수록 이름에 걸맞은 훅을 보여주며 언니들을 긴장시킨다. 여태껏 대중에 노출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사제, 반전, 경쟁 등의 키워드로 고루 들어있다는 점은 <스우파>의 엄청난 경쟁력이다.

SNS 활용도 신의 한 수

<스우파>는 SNS를 적절히 활용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공식 홈페이지의 크루 소개 페이지에 들어가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멤버 사진에 각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연결해둔 점이다.

멤버들은 근사한 댄스 영상과 화려한 일상 사진으로 각자의 개성을 어필한다. 이들의 일상이 담긴 인스타그램 계정은 곧 프로그램의 매력도를 높이는 홍보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마다 멤버들의 인지도와 SNS 팔로워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 Win-Win이었다. 시대를 읽은 <스우파> 제작진의 영리한 전략이다.
 
▲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WANT 소개 페이지
ⓒ Mnet
유튜브도 이용했다. 제작진은 글로벌 대중 평가 요소로 유튜브 '조회수'와 '좋아요'를 채택해 본방송보다 유튜브에 먼저 크루들의 퍼포먼스 영상을 공개했다. 팬들이 만든 콘텐츠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끊임없이 공유됐다.

<스우파> 방영분 중 가장 큰 화제가 됐던 '헤이 마마(Hey mama)' 영상은 특히 더 많은 2차 콘텐츠를 생성했다. 헤이 마마 영상은 각 크루 리더들이 데이비드 게타의 '헤이 마마(Hey mama)' 노래에 웨이비의 노제가 짠 안무로 심사를 받는 장면이 담겼다. 손뼉을 위아래로 놓고 치는 동작이나 큰 스윙 동작 등으로 인기를 끈 이 안무는 리코더 버전, 가수 민경훈 버전, 배우 박정민 버전 등으로 패러디되며 SNS상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홍현희 등 개그우먼들은 <스우파> 댄서들의 특징을 한 명씩 절묘하게 따라 하며 <스트릿 개그우먼 파이터> 시리즈를 연재한다. 출연진 전원이 남성인 KBS2 예능 < 1박 2일 시즌4 >에서도 <스우파>를 패러디한 댄스 배틀이 등장했다. <스우파>는 성별과 장르, 플랫폼도 뛰어넘으며 대세 중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듯 <스우파> 또한 아쉬운 점이 있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의심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1화에서 YGX 여진이 외모만 예쁜 댄서라는 평을 받고 속상해하는 노제에게 "노제씨 괜찮으세요?"라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은 여진을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사실 여진은 방송 전부터 노제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장난을 상대 크루에게 거는 시비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은 많은 시청자의 아쉬움을 샀다. 댄서들이 아이돌 채연을 배척하는 듯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만든 점도 불쾌함을 자아냈다.

상금이 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점도 애석하다. 멤버 개인이 아니라 팀에게 돌아가는 우승 상금은 겨우 5천만 원. 홈페이지에 프로그램 내용이 처음 소개될 때는 그마저도 기재되지 않았다가 누리꾼들의 항의로 상금이 추가되었다. 흥행이 보장된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무리하게 제작비를 사용할 수는 없었겠으나,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섭섭한 대우였다.

지난 1일 처음 선보인 Mnet의 또 다른 서바이벌 예능 <쇼 미 더 머니 10> 우승자에게는 상금, 앨범 제작, 뮤직 비즈니스 지원 혜택 등 3억 원의 혜택이 돌아가는데 말이다. <스우파>의 흥행은 마라 맛의 '악마의 편집'보다 진실된 서사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때로는 기대보다 훨씬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름을 쟁취한 사람들

댄서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배경이 아니다. 묵묵히 춤을 추는 대신 당당하게 자신을 어필한다. 시청자들은 가수들의 컴백 무대에서 <스우파> 댄서들을 찾아내며 즐거워한다. 이제 시미즈가, 엠마가, 이삭과 제트썬이 보인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댄서들을 주인공으로 한 직캠이 등장하는가 하면 댄서들이 광고 주인공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노제는 게임 캐릭터 모델이 되었고 모니카와 립제이는 최신 휴대전화 광고에서 유려한 춤사위를 뽐냈다.

맏언니 모니카는 팬들과의 채팅 대화방에서 "모두가 댄서라는 직업에 무관심해지고 공연도 없어지고 동생들이 하나씩 주변에서 춤을 그만두려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누군가의 팬이 되어 댄서의 상황에서 공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라며 <스우파> 제작을 그 누구 보다 반겼다.

시작한 지 4회 만에 웨이비가 처음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우승 크루가 나올 때까지 나머지 크루들도 차례로 파이트 존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웨이비를 비롯한 이들은 이미 세상을 상대로 이겼다. 트로피나 상금 대신 본인의 이름을 본인들의 팔과 다리로 쟁취했다. 이름을 쟁취한 댄서들의 선명하고 활발한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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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gkgkgk0632 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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