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최면술사가 선사하는 미스터리한 힐링
[장혜령 기자]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포스터 |
ⓒ (주)모쿠슈라픽쳐스 |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첫눈이 사라졌다>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상 부분 및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및 노미네이트되었다. 폴란드를 넘어 유럽의 차세대 거장을 꿈꾸는 여성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의 신작이다. 20여 년간 오랜 파트너로 일해 온 마셀 엔그레르트 감독과 공동 연출했다. 두 감독은 특유의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스한 연출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을 선보인다. 베를린국제영화제 3관왕을 인정받아 나오미 왓츠 주연의 <인피니트 스톰>로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다.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스틸컷 |
ⓒ (주)모쿠슈라픽쳐스 |
제니아는 동네와 멀리 떨어진 허름한 공동주택에 산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 도장을 찍는 성실한 사람이다. 모두 똑같이 생겨 특색 없는 다운타운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다. 마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단막을 통과해야만 했지만 언제나 그는 프리 패스였다. 그만큼 동네에서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라고 믿었으나 속 사정은 천차만별이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출신이란 이유로 차별과 냉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도 아니면 단단한 육체에 끌려 성(性)적 판타지를 바라기도 했다. 가질수록 끝도 없이 욕망하는 집착, 이방인을 배척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하지만 제니아는 눈처럼 순수한 마음과 미소로 괘념치 않는다. 곧 크리스마스였고 더 이상 눈이 오지 않는 마을은 어쩌면 일어날지 모를 기적을 바라고 있었으니까.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스틸컷 |
ⓒ (주)모쿠슈라픽쳐스 |
그의 손이 닿으면 평온한 숲으로 향하고 각자 상상하던 대로 위로받는다. 마음의 숲은 현실의 아픔을 내려놓는 치유의 영역인 셈이다. 암에 걸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성, 남부러울 것 없는 완벽한 가족과 집이 있지만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중년 여성, 남편을 잃고 그리워하는 부인, 배우자 몰래 남몰래 불륜을 저지르는 커플,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지만 마약을 제조해 파는 십 대, UN 출신의 군인이었지만 항상 화가 나 있는 중년 남성 등. 최면에 걸린 자가 꿈꿔온 천국이 그려진다.
사람들의 영혼을 다스리는 그의 묘함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큰 키에 근육질 몸매, 언어 능력자, 실력 좋은 마사지사면서 순진무구함이 느껴진다. 그 때문에 불행과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특별한 능력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덧입힌다.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스틸컷 |
ⓒ (주)모쿠슈라픽쳐스 |
<첫눈이 사라졌다>는 전시회장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정치, 인종, 환경 문제 등이 드러나지만 어느 하나 콕 집어 깊게 다루지 않는다. 판타지와 드라마적 구성을 따르면서도 몽환적인 미장센이 어디에서도 만난 적 없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비밀을 품은 최면술사를 연기한 알렛 엇가프는 우크라이나계 영국인으로 폴란드어에 능통한 배우다. <투어리스트>로 데뷔 후 할리우드와 영국에서 활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3에서 천진난만한 소련 과학자 알렉세이로 낯익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캐릭터를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몸으로 표현한 배우만의 내공이 느껴진다. 신비한 능력이 방사선 피폭으로 생겼는지, 그가 왜 먼 폴란드까지 오게 되었는지 정체와 상황은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상징적인 대사와 은유적인 장면이 많아 오래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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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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