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용두사미' 류현진, 무거웠던 1인자의 역할
[이준목 기자]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토론토)의 2021시즌이 막을 내렸다. 비록 최종전에서 승리는 챙겼지만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는데는 실패하며 아쉬운 모양새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류현진은 4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볼티모어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안타 7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지난 9월 7일 뉴욕 양키스전 이후 4경기 만에 비로소 5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선발투수로서 제몫을 다했다. 모처럼 활발한 타선 지원까지 더해져 팀이 12-4로 승리하며 류현진이 승리 투수가 됐다. 14승째를 기록한 류현진은 2013~2014년과 2019년에 이어 빅리그 한 시즌 개인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토론토는 이날 승리에도 불구하고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에 밀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날 경기전까지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양키스와 보스턴에 1경기 차 뒤져있던 토론토로서는 최종전을 이기고 두 팀 중 한 팀이 패해야 했던 상황. 에이스인 류현진을 최종전에 투입했던 것도 경기의 중요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류현진과 토론토 선수들은 제몫을 다했으나 운은 따르지 않았다. 양키스와 보스턴도 각각 최종전에서 승리를 따내며 토론토의 와일드카드 희망은 사라졌다.
류현진으로서는 토론토 입단 이후 2년연속 '용두사미'로 시즌을 마감한 모양새가 아쉽다. 토론토는 지난해 FA(자유계약선수) 류현진을 영입해 4년 8000만달러의 고액 연봉을 안겼다. 토론토 투수 중 최고 몸값이었다. 류현진으로서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7년을 함께하며 빅마켓과 투수친화 구장이라는 이점이 있던 LA 다저스를 떠나 아메리칸리그에 캐나다 구단인 토론토행을 선택한 것은 과감한 모험이었다. 다저스에서 2-3선발이었다면 토론토에서의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명실상부한 1선발 에이스가 됐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첫 시즌인 2020년 비록 코로나19로 경기 수(60경기)가 대폭 축소되는 변수가 있었지만 류현진은 12경기에서 5승 2패 67이닝 72탈삼진 평균자책점 2.69로 1선발다운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에서 시즌 평균자책점과 세이버매트릭스 투수부문(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기록에서 모두 팀내 1위에 오를만큼 내용도 좋았다.
또한 류현진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 토론토는 4년 만에 포스트시즌 꿈을 이뤘다. 더구나 류현진은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3위에 올랐고, 아시아 투수 최초로 리그 최고 좌완에게 수여하는 워렌 스판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무대인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은 실망스러웠다. 류현진은 전략적인 이유로 와일드카드 시리즈 2차전에 출격했지만 1⅔이닝 8피안타(2피홈런) 1볼넷 3탈삼진 7실점(3자책)으로 처참했다. 만루포 등 홈런 2방을 내주며 2회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토론토는 류현진의 부진속에 2경기만에 일찍 가을야구를 마감해야 했다.
2021년은 류현진이 토론토에서 맞이한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사실상 풀타임으로는 첫 시즌이었다. 류현진은 5월까지는 등판한 10경기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2.62로 에이스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 기간에 류현진이 나선 경기에서 토론토의 성적은 7승3패였다. 류현진은 6월에 5경기서 2승2패 자책점 4.88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7월에는 다시 5경기서 3승1패 평균자책점 2.73으로 반등했다. 전반기 17경기 성적도 8승 5패 평균자책점 3.56으로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팀이 순위싸움이 한창이던 8-9월들어 급격하게 무너졌다. 류현진은 후반기 시작 이후 14경기에서 6승5패 평균자책점 5.50에 그쳤다. 특히 8월 9일부터 시즌 종료까지 마지막 10경기에서 46이닝 38실점 10피홈런 평균자책점 7.43으로 난타당했다. 이중 7실점을 한 경기만 무려 3번이었다. 9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2.1이닝 8피안타 7실점)과 18일 미네소타 트윈스전(2이닝 5피안타 5실점),부상 복귀 이후 29일 뉴욕 양키스전(4.1이닝 6피안타 3실점)까지 3경기 연속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나마 류현진이 등판했던 경기에서 부진했음에도 토론토는 9승 5패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게 위안이었다. 다시 말하면 타선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류현진의 부진은 더욱 도드라졌을 것이다. 실제로 류현진의 2021시즌 메이저리그 타선 득점지원은 약 7.3점으로 리그 1위였다.
류현진이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 2위에 올랐지만 올시즌 평균자책점 4.37은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 중 가장 좋지않은 성적이며 두 자릿수 패배(10패) 역시 개인 한 시즌 최다기록이다. 사실상 올시즌 토론토의 에이스는 13승 7패 평균자책점 2.84로 호투한 팀 동료 로비 레이에게 넘어갔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우수한 제구력과 경기운영 능력이 강점인 기교파 투수로 꼽혔지만 체력과 내구성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첫 해는 경기수가 적은 단축시즌이라 이러한 불안요소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2번째 시즌들어 문제점이 극명하게 노출됐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구위가 차츰 떨어진 류현진은 올해 주무기였던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262까지 치솟았다. 이는 류현진의 커리어하이시즌이던 2019년(.190)과 비교하면 무려 .072나 차이가 난다.
장점이던 제구력이 반감되면서 장타 허용률이 높아졌고 타순이 약 두바퀴만 돌면 볼배합이 간파당하여 공략당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러다보니 1선발이면서도 5-6회만 되면 교체를 고려해야할 만큼 이닝 소화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류현진이 선발출전한 31경기 중 퀄리티스타트(QS,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경기는 승수보다도 적은 13회에 불과했다. 올시즌 토론토가 후반기 순위경쟁에서 대추격전을 펼치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데는 류현진의 책임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시즌 초반과 후반이 역대급으로 극과 극을 달렸던 류현진의 2021시즌은, 정확히 20년전인 대선배인 박찬호의 2001시즌과 비교될 정도로 기복이 두드러졌다. 박찬호는 이듬해 자유계약선수로 텍사스에 이적하며 허리부상 악화로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아직 토론토와의 계약이 2년 더 남아있다.
무엇보다 커리어하이를 보냈음에도 막판 부진으로 사이영상을 놓쳤던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2019년까지 포함하면, 3년 연속으로 전반에 잘하다가 후반기와 결정적 순간에는 제몫을 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 것이 가장 뼈아프다.
올해 후반기의 부진이 에이징 커브의 시작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부진이었는지는 내년의 활약에 달려있다. 비록 실패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에이스 투수로서 몸값에 걸맞은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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