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가 <디피>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이희동 기자]
조금 늦게 넷플릭스 드라마 < D.P. >를 봤다. 처음에는 굳이 또 지나간 군대 이야기를 봐야겠냐는 생각에 미적댔지만, 워낙에 많은 이들이 보고 호평을 하는 바람에 덩달아 보게 되었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오징어 게임>이 대세이지만, 몇 주 전만 해도 사람들의 첫인사는 < D.P. >를 봤느냐였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 D.P. >.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드라마를 도중에 끊을 수 없었다. 1회만 봐야지 했다가 2회를 보고, 3회를 보고, 그렇게 밤새 6회 전편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1.5배속으로 봐서 시청 시간은 줄일 수 있었지만, 드라마의 잔상은 그대로 남아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 <D.P.> 포스터 |
ⓒ 넷플릭스 |
넷플릭스라 가능한 리얼리티
내가 꼽는 < D.P. >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리얼리티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재미있게 보았든, 아니든 간에 그 현실감 하나만은 최고로 꼽는다. 지금까지 군대와 관련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봐왔지만 < D.P. >만큼 예전 군대 생활을 생각나게 한 작품이 있었던가.
이는 < D.P. >가 선택한 플랫폼, 넷플릭스와 관련이 깊다. 군대와 관련된 작품, 특히 군대 내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은 리얼리티가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공중파 드라마들은 일정 수위를 지키기 위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략하거나 축소시켜야만 했다. 가혹행위나 욕설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군대 내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그 헛헛함이란.
그런데 < D.P. >는 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에는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도 비슷하긴 하지만 드라마는 차원이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긴 시간을 들이는 까닭에 리얼리티를 더 실감나게 살릴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는 훨씬 많은 감정을 쌓게 된다. 영화가 결정적이고 압축적인 서사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드라마는 세밀하고 반복된 묘사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 D.P. >를 보고나서 악몽이 떠오른다고 호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군대에서 말도 안 되는 일상을 영위했고,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설마 군대가 진짜 저러냐고 묻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보다 더 했으면 더 했노라고.
이와 관련하여 그나마 다행인 것은 < D.P. >를 본 미필자들의 군대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사회에서는 군대 경험을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로 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필자들이 죽어라 군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드라마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는데, 이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가산점이 아니라 사회적인 위로일지도 모른다. 군필자들이 < D.P. >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 상상 그 이상이다 |
ⓒ 넷플릭스 |
< D.P. > 인기의 또 다른 원인은 드라마가 그리는 군대가 곧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황 병장은 왜 그렇게까지 괴롭혔냐는 조 일병의 질문에 답한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이 얼마나 황당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대사인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부조리들의 대다수는 이와 똑같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멸시. 거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벌이는 상황이며, 그와 같은 약자에 대한 혐오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드라마는 사병뿐만 아니라 간부들 간의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여주는데, 이는 군대와 사회의 경계 위에 있는 그들 역시 같은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이들이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방관자의 내면화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만연한 것이 바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사고방식 아니던가. 내가 피해보지만 않으면 남의 피해는 기꺼이 눈감고 나몰라 할 수 있다는 비겁한 생각. 이것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상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
야당은 최근 군에서 벌어진 성추행 등 일련의 사건을 빌미로 정부여당을 공격하며 국방부 장관의 사퇴 등을 종용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국민으로서 그들의 요구는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국방부 장관이 바뀐들 군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군대는 사회의 반영일 뿐이니까. 군대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변혁부터 필요하다. 그것 없이 군대의 변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 다시 갈 일은 없겠지 |
ⓒ 넷플릭스 |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 D.P. >의 인기 요인은 안도감이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이들 중 상당수는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로 안도감을 이야기한다. 비록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무섭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지각 자체가 하나의 쾌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 D.P. >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악몽을 떠올리지만 어쨌든 끝났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은 저런 곳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비록 군대는 사회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군대와 사회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군대에서는 그 모든 부당함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게 마련이지만, 사회에서는 개인들에게 각각 기댈 곳이 존재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흉 볼 사람이 있고 위로받을 사람이 있으면 견딜 만하다.
드라마에서 정해인이 분한 준호가 조 일병에게 미안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만약 준호가 조 일병을 위로하고 그의 분노에 함께 공감했다면 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도생의 집단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삭힐 수밖에 없었기에 사고가 일어났다. 이와 같은 위험은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늘 존재한다. 우리가 항상 주위를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D.P. > 시즌2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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