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위기에서 터진 '호재'들, 포항을 구했다

서호정 기자 2021. 10. 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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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포항스틸러스의 9월은 위기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전에서 세레소 오사카를 꺾으며 8강에 올랐지만, 리그에서는 4연패를 당하며 파이널A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특히 골키퍼 강현무가 부상으로 빠진 뒤 당한 3연패는 팀 사기까지 흔들었다. 


3일 광주FC와의 원정 경기마저 패하면 7위 포항은 코너에 몰릴 수 있었다. 앞서 열린 33라운드 일정에서 5위 제주유나이티드와 6위 수원삼성이 나란히 승리를 거둔 터라, 1경기를 남겨 놓고 승점 차도 3점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었다. 최근 몰수패로 인해 다시 최하위로 추락한 광주 역시 홈에서 결사항전의 각오를 보였다. 


전반에 소극적이던 경기는 후반 들어 난타전 양상을 변했다. 후반 9분 팔라시오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왼발로 감아 찬 평범한 공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광주의 수문장 윤평국의 예상보다 많이 휜 공은 크로스에서 슛으로 변모해 골이 됐다. 팔라시오스의 시즌 첫 득점이었다. 


홈팀 광주도 거세게 밀고 나왔다. 후반 24분 엄원상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김종우가 침착하게 동점골로 연결했다. 2분 뒤 기세를 몰아 역전골까지 만들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된 두현석이 골에어리어에서 완벽한 볼 터치에 이은 왼발 슛으로 다시 포항의 골망을 흔들었다. 광주는 포항과 통산 20번 맞붙어 6무 14패로 유일하게 상대 전적에서 승리가 없었다. 최하위 탈출에 포항 징크스를 깨겠다는 강한 의지가 홈에서 발현됐다. 


5연패로 빠질 수 있는 위기에서 김기동 감독은 의외의 카드를 꺼냈다. 최전방의 이승모와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인 3선의 신진호를 빼고 이호재와 이수빈을 투입했다. 특히 192cm의 장신 공격수 이호재의 투입이 눈길을 끌었다. 올 시즌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타쉬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후반기에는 미드필더 이승모를 최전방으로 전진시킨 제로톱(펄스나인) 전술을 이어오던 포항이 승부처에서 2000년생의 신인 스트라이커에게 운명을 맡긴 것이다.


이호재는 이 경기 전까지 8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었다. 후반기에는 전북, 수원과의 경기에 도합 13분을 뛴 게 전부였다. 도박 같아 보였지만 김기동 감독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광주 원정을 앞두고 이호재는 황선홍 감독이 처음 소집한 23세 이하 대표팀 훈련에 다녀왔다. 3박 4일의 짧은 훈련이었지만, 고려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30분 동안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공격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아서 복귀했다. 


김기동 감독은 "돌아온 뒤 팀 훈련을 이틀 동안 했는데 호재 플레이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왔다. 형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있다가 또래들끼리 모여서 훈련을 하고, 해트트릭도 하니까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공격 담당인 이광재 코치도 김기동 감독과 비슷한 느낌을 전달했다. 광주 원정을 가기 전 팀 내 자체 연습경기에서도 적극적인 슈팅 템포가 보였다. "최근 승모가 최전방에서 힘들어 했고, 후반에는 호재를 쓸 타이밍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 오랜만에 명단에 넣었다"는 김기동 감독의 설명이었다. 이호재는 8월 28일 수원전 이후 한달여 만에 다시 출전 명단에 들었다. 


투입 직후부터 적극적인 볼 경합과 투쟁심을 보이던 이호재는 후반 37분 임상협이 왼쪽 측면에서 띄운 크로스를 정확한 타점의 헤더로 연결, 광주 골대 왼쪽 상단을 통과시켰다. K리그 출전 9경기 만에 기록한 첫 슈팅이 골로 이어졌다. 자신감이 붙은 이호재는 후반 45분에는 이수빈의 빠른 템포의 패스를 광주 수비수 이한도를 등진 채 잡고 돌아서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했다. 공은 광주 골대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 역전골이 됐다. 후반 추가시간에 기록한 페널티박스 왼쪽에서의 강슛까지, 이전 8경기에서 단 1개의 슈팅도 없었던 이호재는 이날 3개의 슈팅을 모두 유효슈팅으로 연결해 그 중 2개를 골로 만들었다. 


이호재는 이기형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의 아들로 유명하다. 아버지의 현역 마지막 무대였던 뉴질랜드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큰 체격 조건을 이용해 고려대 재학 시절 대학 최고의 공격수로 각광을 모았다.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찾던 김기동 감독은 스카우트팀의 추천과 고려대와의 연습경기를 통한 직접 확인으로 이호재 영입을 결정했다. 


고비도 있었다. 인천과의 시즌 개막전에 후반 막판 투입된 이호재는 완벽한 득점 찬스를 슈팅까지 연결도 못해 아쉬움을 삼켰다. 4월 열린 제주와의 홈 경기 때는 후반 17분 투입됐다가 소극적인 플레이만 남발하다 17분만에 재교체되고 말았다. 김기동 감독은 "그때 이기형 감독이 전화 와서 '형님 제 아들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이해합니다. 혼내주세요'라고 하길래, '나도 미안해. 이해해줘서 고마워'라고 얘기했었다"라고 숨은 이야기도 전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호재는 더 분발하고 노력했다는 게 구단 내부의 전언이다. 팀 동료이자 선배인 임상협은 "호재는 늘 성실하게 운동에 임한다. 출전 시간이 짧고, 최근에는 아예 명단에 못 들었지만 훈련 중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다. 그런 점을 모두 좋게 봤다"라고 말했다. 김기동 감독도 "맞다. 그런 점 때문에 나와 코치들이 포기하지 않고 호재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이번 광주전이 여러모로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는데 호재가 팀을 구해줬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데뷔골을 포함한 이호재의 멀티골 외에 다른 호재도 있었다. 김기동 감독은 "마누(팔라시오스)가 드디어 골이 나왔다. 상협이도 햄스트링이 좋지 않은데 후반에 들어가 2도움을 올려줬다. 진호를 빼고 수빈이를 넣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는데 결국 해 줬다. 고비에서 여러 문제가 해소됐다"고 인정했다. 이런 것들이 뭉치며 포항은 6위 수원과 승점 차 없는 7위로 추격을 이어갔다.


2실점을 했지만 지난 3경기 내내 골키퍼들의 계속되던 결정적 실수도 광주전에선 없었다. 김기동 감독은 강원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큰 실수를 범한 이준을 광주전에 다시 투입했다. 강원전이 끝난 뒤 김기동 감독은 공개적으로 골키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3경기 연속 그런 상황이 나오다 보니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강원전은 준이의 데뷔전이라는 걸 감안해야 했지만 거기서 골키퍼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필드 플레이어들도 무너질 것 같았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포항으로 돌아온 뒤 김기동 감독은 이준과 개인 면담을 했다고 소개했다. 사실 이준 역시 햄스트링 통증을 안고 있었다. "준이에게 위로의 말을 원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준이가 멘탈이 좋았다. 필요 없다고 하더라. 부상이 있는 건 나도 알지만 밖에서 보는 팬들은 그런 걸 모른다. 오직 퍼포먼스로 평가받는다. 광주전에 다시 기회가 갈 테니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그걸 해줬다. 준이를 비롯한 골키퍼들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라는 게 김기동 감독의 설명이었다. 


발목 뼛조각 부상으로 현재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주전 골키퍼 강현무는 금주 중 몸 상태를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김기동 감독은 "광주전을 앞두고 현무가 찾아왔다. 본인도 참을 수만 있다면 팀을 위해 뛰고 싶은데 통증이 계속 있다고 하더라. 이번주까지 같이 관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술에 들어가면 시즌 아웃이다. 남은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백업 골키퍼들이 책임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광주전에서 드디어 골키퍼들의 결정적 미스 없이 팀이 역전승을 거둔 것은 포항이 잔여 시즌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더 없는 호재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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