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신뢰 회복, 그리고 동반성장

2021. 10. 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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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영국 런던의 금융가(더 시티)에는 세계 최고(最古)의 옛 증권거래소가 버티고 서 있다. 그 건물 전면에는 라틴어로 딕툼 메움 팍툼(Dictum Meum Pactum) 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가 한 말은 곧 보증수표’라는 뜻이다. 철저한 신용과 단단한 신의가 금융의 생명임을 말해준다. 오늘날 런던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된 것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때문만도 아니고 시차 때문에 24시간 국제영업이 가능한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신뢰 때문이다. 정부 정책도 금융 못지않게 신뢰가 중요하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한 역사나, 미국이 패권국으로 도약한 역사는 신뢰받는 정부의 역할을 빼놓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최근 우리 정부의 신뢰수준은 바닥에 떨어졌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빈번히 쏟아 냈지만 국민은 집값·전셋값 급등과 극심한 희망고문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경험했다. 탈원전 정책은 과학적 분석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결정되었다.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선 ‘조금만 참으면 정상화될 것’이란 말을 정부가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런 호언장담을 믿는 국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 소상공인들은 빚더미에 짓눌려 생사의 기로로 내몰리는데도, 정부는 코로나 피해의 효율적·효과적 보상을 위한 선택과 집중은커녕 재난지원 대상을 전 국민에게로 확대하지 못해 안달이다. 피해가 크든 작든, 피해를 입었든 안 입었든 모든 국민이 똑같이 획일적으로 위로받아야 한다는 선거용 정치논리인가. 심각한 위험에 빠진 국민을 최우선으로 구하기 위해 정부가 진정성 있게 다가서지 않는다면 누가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소수의 국민은 영원히 속일 수 있다. 많은 국민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 정부가 신뢰 받아야 국가가 성장
부동산·방역 등 정책 잇따른 실패
사과하고 잘못된 것 빨리 고쳐야
동반성장을 사회 작동원리 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라도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부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나?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주변의 다른 사람이 대신 사과해 봐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또 고칠 수 있는 것은 빨리 고쳐야 한다. 사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정직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그것은 정부가 지금껏 해온 것과는 다른 새로운 대응을 뜻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의 뉴딜정책은 배울 게 많다.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그때 미국이나 지금 한국이나 위기인 건 마찬가지다. 미국의 뉴딜은 구호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과감하고 꾸준한 실천으로 성공했다. 성공의 뒤에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신뢰를 얻기 위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당시 라디오 ‘노변정담’에서 특유의 유머, 과장하지 않는 솔직함과 담백함으로 국민을 감동시키고 주요 정책을 국민에게 쉬운 말로 허심탄회하게 전달했다. 임기가 7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우리 대통령도 해야할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 ‘대장동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의 공명정대한 처리는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실책을 적잖게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을 신속히 그리고 철저히 조사토록 지시하고 그 진상을 세상에 밝힐 것을 촉구한다.

신뢰의 추락도 걱정이지만 한국경제의 앞날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술혁신만큼 더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한 때일수록 원리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나는 이 참에 동반성장을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로 삼기를 제안한다. 있는 사람 것을 빼앗아 없는 이에게 나누어주자는 것이 동반성장인가? 그렇지 않다. 동반성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정한 기회, 불편부당한 규칙, 그리고 공정한 분배를 통해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워 ‘함께 멀리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반자본주의적인가? 그렇지 않다. 동반성장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A Smith)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수립한 자본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중상주의, 고전적 자본주의, 케인스주의, 신자유주의를 이어갈 새로운 사회작동의 원리요, 철학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 동반성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오늘날 동반성장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포용성장, 기업시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운동 등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동반성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의식주가 넉넉할 때 변하지 않는 도덕심이 함양된다(恒産恒心).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해소하고 성장의 가치를 공유하여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을 때, 건강한 공동체가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국민 각자가 서로 배려하고 관용하며 스스로 앞장서 건강한 공동체를 일궈가는 사회.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동반성장 사회다. 물론 신뢰받는 정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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