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후보님, 여성 소방관 앞에선 불길이 약해집니까?[크로커다일이 저격한다]

크로커다일 2021. 10.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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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후보님.
얼마전 경선 국민의힘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경찰 선발 체력기준’에 대한 질문을 받으신 적이 있죠. 그때 남자와 여자의 기준이 달라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하신 걸로 압니다. 경찰뿐 아니라 군인과 소방관을 선발할 때 역시 여성 지원자에 대한 체력기준이 달라야 한다고 답했고요. “체력을 요하는 문제에서 남자와 여자는 달라야 한다. 차별이 아니고 구별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범죄자가 여경을 맞닥뜨리면 갑자기 체력이 낮아지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여자 소방관 앞에서는 불길이 약해지나요? 적군이 남군에게는 총알 10발을 쏘면서 여군에게는 1발만 쏘는 식으로 ‘구별’해서 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설마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 대선주자 경선 토론회에 나와서 별 생각없이 “여자와 남자는 다르니까 구별을 해야한다”는 장삼이사가 술상에서 할법한 수준의 이야기를 하신 건 아니겠죠. 그 발언을 듣자마자 혹시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귀를 의심했습니다.

‘여경’을 뽑는 게 아니라 ‘경찰’을 뽑는 것입니다. 경찰에 남성·여성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여경 무용론이 힘을 얻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을 선발하는 체력 시험에 남녀 구분을 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선발 기준이 같았다면 "여경이 필요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이 나왔을까요? 아닐 겁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선발기준이 다른 건 엄연한 불공정입니다.

지난 2019년 여경 논란을 불러온 대림동 사건 CCTV 영상. [사진 구로서]

혹시 선발 기준을 따로 두는 게 여성을 위하고 배려하는 태도라고 착각하시는 건지요. 이건 오히려 배려라는 가면으로 여성을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여성 지원자는 그러한 기준을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고 오판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니까요. 기성세대의 이런 구태의연한 생각이 불필요하게 여성과 남성을 반목하게 합니다.


이미 남녀 같은 선발 과정으로 변화


아마 모르셨겠지만 선발 과정은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경찰대 선발 과정에 남녀 통합선발 체력검사를 도입하기로 했고, 2026년부터는 경찰관 선발 과정에서도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지망생이 같은 기준으로 체력검사를 보게 됩니다. 하루 이틀 된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2017년부터 경찰개혁위원회에서 추진한 사안입니다. 이런 와중에 나온 남녀 구별 발언은 홍 후보님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여군 징병제와 관련해서도 ‘전통적으로 남성만 해오던 것’이라는 이유로 여성 징병을 반대하셨습니다. 이 역시 젠더 이슈에 대한 홍 후보님의 전근대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밖에는 해석이 되질 않습니다. 집안일이나 애 키우는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다 해왔으니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까? 저는 이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참, 여성은 지원병제가 있다고 하셨죠. 그건 부사관이나 장교의 경우만 가능합니다. 사병으로 여성이 군대에 갈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모르셨나요? 일각에서는 홍 후보가 이미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으니 굳이 여군 징병제에 대한 찬반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여군(사병) 모병은 가능한데, 왜 여군 징병은 안 됩니까. 그럼 남자는 왜 징병을 당해도 괜찮은가요? 그냥 과거부터 해왔던 전통이라 그런 겁니까?

여군 징병제와 군 가산점 제도


지금 주장하는 모병제도 사실상 현실성이 없는 공약입니다. 출생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아무리 현대식으로 군대를 재편한다 한들 징병제 없이 필요 병력을 전부 충당할 수는 없습니다. 여군 징병제가 나온 배경도 같은 맥락입니다. 현재와 같은 남성 징병 100%로도 병력이 모자라니까요.

아마 이 내용을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드라마 'D.P.'를 보고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물음에 홍 후보는 이미 5년 전 대선 공약이라고 답하셨지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정반대더군요. 대선공약에 그런 내용은 없었고 2017년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모병제와 군 복무 단축 의견에 "턱도 아닌 얘기" "젊은 사람들 표 얻으려고 하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비판을 가하셨습니다.

모병제는 논쟁적 이슈입니다. 모병제 불가 의견과 달리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모병제 복무 기간은 지금의 1~2년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을 복무해야 한다면 누구나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병제를 주장하는 분들은 꼭 이 말을 빼놓더군요. 다들 1년 6개월 복무하면서 두둑한 월급까지 챙긴다면 모병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죠.
이미 지난 1999년 군 가산점 제도가 위헌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성과 장애인이 군대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노르웨이식 군 징병제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나라에선 여성과 장애인도 복무 대상으로 신체검사까지는 하되 징병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여성과 장애인이 근무가 가능한 병과를 세밀하게 설정하고 급여를 현실화하면 복무할 때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과 손실을 고려해 여성 징병제도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제도를 도입하면 군 복무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행위도 위헌 판정을 받지 않을 것이고, 군 위상이 올라가 부조리 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반 페미 삼신기'라는 허상


홍 후보님을 지지하는 젊은 남자 사이에서 “홍준표가 젠더 이슈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캠프 안에 반(反) 페미니즘 삼신기(최종병기)가 있어 여성정책에 대해선 걱정할 것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반 페미니즘 영상 등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유튜버 여명숙 전 게임물 관리 위원장 등 반 페미니즘 인사들이 홍 캠프에서 여성정책을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간판은 반 페미니즘으로 뒤덮어 여성의 접근을 막고, 막상 들여다보면 타당성 없는 정책으로 젊은 남성까지 결국 외면하게 만드는 전략이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공수표 날리면서, 여가부 폐지 같은 자극적이고 매운맛 정책으로 잠시 눈속임만 하자는 건가요? 여가부를 없애게 되면 부처별로 쪼개지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예산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원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자격미달의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이 사실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데, 그럼 그 때도 저번처럼 ‘번복’ 하실 생각 이신지요?
시원하게 할 말 하는 '사이다' 좋습니다. 일단은 시원하니까요. 그러나 사이다를 너무 많이 마시면 이 썩고 당뇨 위험은 올라갑니다. 홍 후보의 오래된 팬으로 적어봤습니다. 부디 한 번 더 깊게 생각하시고, 대선 경선 임하시길 빕니다.

크로커다일 헤비메탈 로커 겸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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