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몰랐나..그 말이 비수가 될 줄
‘오징어 게임’ 패러디 중 눈에 띄는 것은, ‘50억 게임’ 패러디다. 곽상도 무소속(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성과급+산재 위로금+퇴직금’으로 받았다는 50억원이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온 결과물이다. 세금을 떼고 28억원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28억원이라고 해도 일반 월급쟁이가 평생을 모아도 만들 수 없는 금액이다. 대리급이 이 정도 금액을 받고 퇴사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화천대유 측은 “여러 가지 의혹과 억측이 있는데 저희(화천대유)는 기본 퇴직금이 5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일반 국민, 특히 청장년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오죽하면 많은 젊은이가 이제부터라도 부동산 업계에 취직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겠다고 할까?
이런 박탈감이 정치인 혹은 정치인 주변 인물의 ‘말’에 의해 더 커질 수 있다.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서 돈 많이 번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도 일반 국민의 박탈감을 키웠다. 곽 의원 아들은 “기침이 끊이지 않고, 이명이 들렸으며,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이 생기고는 했다”며 “점차 심해지더니 한번은 운전 중에, 또 한번은 회사에서 쓰러져 회사 동료가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개인의 입장과 사정을 말하기 전에 직장 때문에 건강이 악화된 다른 직장인도 과연 이 정도 금액을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가부터 생각했어야 했다. 이런 고려 없이 자신의 입장만을 밝혔으니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곽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했어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더 강경한 조치를 언급하는 것이다.
유권자에게 박탈감을 주면 대선판은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는 이런 상황에서 제명과 같은 보다 강경한 조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스스로 의원직 사퇴를 ‘강행’한 선례가 있지 않나. 그 대비 효과로 인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제명 같은 더욱 강한 조치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곽상도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하지 않고 버텨서 제명을 하려 한다 해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재적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제명되지만, 민주당이 제명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곽상도 의원 이름이 오르내려야 자신들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인 혹은 그 주변의 ‘말’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고 반전시킬 수도 있다.
‘말’과 관련, 자신의 입장을 어렵게 한 경우는 또 있다. 지난 9월 23일 2차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본 적 있나”라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저는 뭐 집이 없어서 만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이라고 답한 것이 대표적이다. 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주택청약통장이 언제, 어디에 필요한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 실정인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면 어느 정도 부동산 관련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정치인의 ‘말’ 속에는 현재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공감 능력이 포함돼야 한다.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줄 경우, 신뢰는 반감된다.
더구나 윤 전 총장의 해당 발언은 상당히 많은 국민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 현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집을 살 수도 없고, 전셋값마저 급등해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청약통장 개념을 잘 모르는 듯한 발언을 했으니 말이다. 일반 국민은 박탈감뿐 아니라 의지할 곳도 없다는 인식마저 가질 수 있다.
유력 대권 후보로서 윤 전 총장이 모든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지식과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시대적 문제의식과 거기서 파생되는 고민의 흔적을 유권자에게 전달해야 유력 대권 후보로서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만 보면, 윤 전 총장은 그런 시대적 고민을 보여주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런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야당의 다른 경쟁 후보들은 윤 전 총장의 정책 전반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려 들고 있다. 덕분에 토론회가 일종의 테스트의 장(場)이 돼버렸다.
예를 들어, 지난 국민의힘 대선 경선 3차 TV토론회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군사적 균형을 깨지 말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언제 했습니까? 이번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홍 의원은 “그걸 모르면 넘어가겠다”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홍준표 의원은 보수층에 가장 민감한 이슈인 안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해당 사안에 관해 윤 전 총장과 자신의 식견을 비교하게 만들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유력 대선 후보의 바쁜 일정을 고려하면, 후보가 현안을 모를 수는 있다. 그런데 캠프가 중요한 사안을 요약해 매일 후보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캠프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여정의 최근 일련의 언급과 그 이후의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UN에서 남북미 혹은 중국까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하자, 김여정 부부장은 9월 24일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한 다음 날인 25일 김여정 부부장은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 수뇌 상봉과 같은 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도 건설적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단서를 달았다.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이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이 위협적 도발로 매도되고 남측의 군비 증강 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이중 기준은 비논리적이고 유치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도발을 도발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유력 대선 주자들은 북한 동향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북한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측이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측이나 매한가지로 문제다.
정치에 있어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불리한 입지를 돌파하기 위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수단도 ‘말’이고, 자신의 유리한 입지를 ‘말’로 망칠 수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8호 (2021.10.06~2021.10.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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