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선 복원에도 靑침묵.."섣불리 北 편들다간 큰 일 망친다"

강태화 2021. 10. 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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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4일 북한이 55일만에 남북통신연락선을 복원한 것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경북 포항 영일만에서 열린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입장은 통일부와 국방부의 설명으로 대체할 예정”이라며 “청와대는 입장을 별도로 밝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대화 채널 복구는 임기를 7개월여 남겨두고 남북 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전개다. 청와대는 특히 그간 통신선 복구에 대해 "가장 쉬운 1단계 조치"라며 "통신선 재개 후 다양한 채널의 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공언해오기도 했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뜻에 따라 모든 남북통신연락선들을 복원한 4일 통일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관계자가 통신연락선을 통해 북측과 통화를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그럼에도 청와대가 통신선 복구에 침묵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핵심 인사는 “현재 북ㆍ미 접촉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이라며 “팽팽한 의견 조정이 이뤄지는 민감한 시기에 청와대가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섣불리 움직였다가 ‘일’을 망칠 수 있다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이는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의 경험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당시 북·미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했던 청와대에서는 “하노이 회담은 북·미 정상이 합의를 이룬 뒤 만나 서명하는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고, 한국은 잘못된 중재에 대한 책임을 북·미 모두로부터 지게 됐다.

지난 2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 회의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퇴장하면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악수 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즉흥적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미국도 충분히 동의했다'고 오판하고 북한을 안심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 정부의 대북 기조는 과거보다 훨씬 신중하기 때문에 미국의 확실한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북한을 옹호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 정의용 외교장관의 발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청와대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정 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인센티브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국회에 출석해선 “(대북) 제재 완화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즉각 “북한과의 논의를 위한 구체적 제안을 했지만, 현시점까지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받아쳤다.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는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에 대해서도 사전 인센티브가 아닌 대화를 통해 논의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며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외교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은 ‘판을 깨자’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가 청와대를 신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연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핵심 인사는 “하노이 노딜 이후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핵심은 한국의 중재가 아닌 북ㆍ미간 신뢰라는 점을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됐다”며 “여권을 중심으로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청와대는 북ㆍ미의 신뢰 구축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남북정상회담은 무의미하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기내 간담회에서 “결국 북한도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그 시기가 우리 정부에서 이뤄질지, 다음 정부로 이어졌을 때 이뤄질 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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