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번째 부동산에서 찾은 LH청년전세임대, 다행이지만.."
청년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는 청년주거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10월 4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청년들의 임대차계약과 세입자 경험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민달팽이 유니온]
2021년, 청년을 새로운 주거취약계층으로 규정하며 민달팽이유니온(아래 민달팽이)이 활동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10년을 돌이켜보면 눈에 띄는 변화도, 여전한 지지부진함도 있다. 그 속에서 민달팽이의 한 가지 고민은 청년기본법이 시행되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된 후 첫해 임에도 청년의 일상적인 주거 경험이 더 나아졌다는 낙관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영끌, 빚투 소식이 넘친다. 이런 기사들을 볼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민달팽이는 이렇게 고민한다.
'민달팽이에게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들은 그런 이야기가 전부는 아닌데.'
그래서 가장 일선에서 듣는 청년들의 일상을 풀어내고자 한다. 분명 우리 주위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로 이야기를 들려줄 청년 이글루는 서울시 OO구에 1년째 거주 중인 여성 1인 가구이다. 청년 이글루와는 LH청년전세임대 정책 경험 중 느낀 문제점과 여성 1인가구로 살면서 느낀 점을 나누었다.
LH에서 시행하는 청년전세임대는 청년층(대학생·취업준비생·만19세~39세)의 주거비부담 완화를 위해 LH에서 기존주택을 전세계약 체결하여 재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을 말한다. 임대보증금은 1순위 100만 원, 2·3순위 200만 원이며, 전세금 지원 한도액은 수도권에 1인이 단독 거주할 때를 기준으로 1억 2천만 원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 돕는 방파제지만...
▲ 청년 이글루는 회사 근처 270개의 공인중개사 목록을 만든 후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160번째 전화를 돌린 곳에서 최종적으로 집을 찾았다. 그러나 LH청년전세임대라는 이유로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다. |
ⓒ pixabay |
- 부동산에 가서 LH청년전세임대를 구하러 왔다고 하면 매물이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LH청년전세임대로 집을 구하게 되셨나요?
"직장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OO구로 가게 되었는데요. 이곳은 일반 전셋집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어요. 회사 근처 270개의 공인중개사 목록을 만든 후 일일이 전화를 돌렸어요. 그러다 160번째 전화를 돌린 곳에서 최종적으로 집을 찾았죠.
둘러본 매물은 대략 10곳이었어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까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 1층인데 대로변에 있어서 창문을 열면 길거리의 사람들을 바로 볼 수 있는 집, 북향이라 햇빛이 아예 안 드는 집 그리고 옥탑방과 반지하. 그 가운데 가장 나은 집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이에요.
당시에는 직장 때문에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른 집을 더 찾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현재의 집은 제가 가진 경제력에 비해서는 위치나 평수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30년 이상 된 구옥이라 하자가 많아요."
- LH청년전세임대로 집을 구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우선 전셋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고요. 또 다른 이유로는 임대인들이 서류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겪는 복잡함, 재산 공개 등을 이유로 꺼린다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임대인은 어려운 청년에게 호혜를 베푼다는 느낌으로 접근하고, 중개사는 열악한 집임에도 'LH청년전세임대로는 여기가 최선이다', '이 집 이상은 못 구한다'라는 식으로 강요하죠. 이런 상황들이 청년들의 다양한 선택을 더욱 막는 것 같고요."
- 그럼에도 LH청년전세임대 수요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년들을 위한 주거정책 가운데 행복주택이나 역세권 청년주택, 매입임대주택 같은 경우 자기 자본금이 목돈으로 크게 들어가요. 중소기업 청년전세대출은 정규직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LH청년전세임대는 재산과 소득을 까다롭게 보기는 하지만, 정규직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고, 돈은 계약금 100만 원(2020년도 기준)만 있으면 돼요. 또 추첨이 아니라서 기한과 조건에 맞게 신청만 하면 얼마든지 선정될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제도에 비해 문턱이 낮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 이외에도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셨나요?
"이 제도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이 더 이상 고시원 같은 곳을 전전하지 않고도 집이라는 형태를 갖춘 곳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청년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제도를 통해 청년들이 거주하게 되는 집이 정말 살만한 곳인지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상품 가치가 현격히 떨어지는 매물 가운데 계약한 집이 정말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LH청년전세임대에 선정이 되고도 제대로 된 집을 구하지 못해서 결국 계약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물론 고시원과 비교한다면 조금은 나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 임대인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오면 짖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하다며 방범창 설치를 거부했다. |
ⓒ 이희훈 |
- 여성 1인 가구로서의 경험을 들려주신 다면요?
"처음으로 독립을 하는 데다 부모님 없이 계약을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집수리와 관련해 임대인에게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계약 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봤을 때 안방과 주방에 베란다가 있었는데요. 양쪽 다 방범창이 없더라고요. 제가 사는 곳은 저층인 데다 주변에 담장이 있거든요. 저는 당연히 설치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계약 후에 임대인에게 방범창 이야기를 꺼내니 완강하게 반대를 하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니 구옥인 탓에 설치 과정에서 벽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사설 방범업체를 통해 방범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조차 반대하더라고요. 장비를 연결하느라 벽에 못을 박고 창문에 작은 구멍을 뚫어야 했거든요.
임대인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오면 짖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막막하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사는 여성의 불안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임차인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본인들의 건물과 재산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결국에는 제가 울고 불며 싸운 끝에 방범시설을 설치했는데, 덕분에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안심하며 잘 수 있게 됐어요."
- 집에서 해충 문제도 겪으셨다고요.
"집 양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10개가 넘는데 단 한 곳도 방충망이 없었어요. 저는 당연히 설치를 해줄 거라 생각하고 계약 후에 이야기를 꺼냈죠. 그런데 임대인이 말하길, 문을 열고 싶으면 에어컨을 틀라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고, 나중에는 결국 설치를 해준다기에 기다렸는데 이삿날 집에 가보니까 창문 1곳에만 설치를 해놨더라고요.
그리고는 이사 당일 날 거실에서 새끼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어요. 임대인은 너무나 천연한 얼굴로 원래 이런 구옥에는 벌레가 사는 거라며 약을 치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미 방범창 문제로 너무 크게 마찰을 빚은 터라 이번엔 제가 그냥 해결하고 싶어서 방충망 업체를 알아봤는데 20만 원을 요구하더라고요.
그냥 동네 철물점으로 가서 모기장과 지지대를 만 원 정도에 구입했어요. 철물점 사장님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직접 설치했죠. 2~3일 동안 베란다에 바들바들 매달린 채로 거의 울면서 설치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서러웠는데 방충망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 이외에 임차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 돈은 아니지만 정당하게 돈을 내고 들어가는데도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어려워요. 특히 중개사분들이 주로 임대인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더욱이 제가 집 계약 경험도 없고, 나이도 적은 데다 여자이니까 만만하게 생각하는 느낌이랄까요. 집을 보는 시간도 짧게는 10분, 길어야 30분 정도니까 놓치는 부분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중개사분들이 집을 소개하실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도 숨기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는 식이었고요. 그에 따른 책임은 결국 임차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임대인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수리 문제도 청년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중개사를 관리하거나 중개사고 및 불만에 대해 신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통로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세입자로 사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위축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임대인이나 중개사를 상대할 때 위축되고 휘둘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의 없이 싸우라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서 끙끙대지 마시고, 이제는 청년들을 돕는 통로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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