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정치 커뮤니티의 재발견

백상진 2021. 10. 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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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경선 TV토론이 있는 날이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대선판에서 후보들에 대한 여론을 날것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진보·보수 성향뿐 아니라 세대별로도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며 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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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진 정치부 기자


20대 대선 경선 TV토론이 있는 날이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 정치 게시판에서 쏟아지는 실시간 반응은 날카롭다. 후보들의 제스처와 표정 변화, 현안에 대한 입장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종종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대선판에서 후보들에 대한 여론을 날것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가장 극적인 사례는 홍준표 의원에 대해 ‘조국수홍’(조국 수호+홍준표)이란 평가가 나왔던 국민의힘 경선 1차 TV토론이었다. 홍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검사 시절 보수 궤멸에 앞장섰다고 공격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해 하태경 의원의 역공을 받았다. 하 의원이 “조 전 장관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이냐”고 따지자 홍 의원은 “수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과잉 수사를 했다는 것”이라며 “모든 가족을 도륙하는 수사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커뮤니티 내 정치 게시판이 들끓었다. 홍 의원이 ‘공정’의 역린을 건드린 조 전 장관 일가를 비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자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이 아니라 ‘조국수홍’이었나”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무야홍’을 확산시키며 홍 의원을 국민의힘 후보들 중 ‘양강’으로 밀어 올린 20대 남성 주축의 커뮤니티에서 이런 반응들이 많았다.

위기에 몰린 홍 의원은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했다.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제 생각을 바꾸겠다. 조국 수사에 대한 평소 생각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강성 이미지인 홍 의원의 즉각적인 입장 변화는 ‘이대남’(20대 남성) 지지율을 의식한 행보였다.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문재인정부를 떠받치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주요 기반이 이들 커뮤니티라는 분석도 있다. 현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쓴 언론사에 릴레이 항의 전화를 하는 등 행동력도 입증됐다. 친문(친문재인) 강성지지층은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고마워요 문재인’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리는 축하 이벤트를 벌여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는 문재인 대통령 생일 이벤트로 ‘평화올림픽’을 실시간 검색어로 만들기도 했다.

내년 대선에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사활을 건 전투를 펼칠 때 이들 커뮤니티의 존재감도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그동안 스포츠나 요리, 자동차 등 다양한 관심사에서 출발한 유명 커뮤니티들은 여러 정치적 변곡점을 거치면서 선거 때마다 강력한 여론형성 기능을 담당해온 경험이 축적됐다. 과거엔 정당의 높은 벽 앞에서 ‘B급 문화’ 취급을 받던 방식이 현재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밈’(온라인에서 놀이처럼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강한 파급력을 낳고 있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을 만들어낸 2030의 무서운 기세는 이런 온라인 여론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여야 대선 후보 중 선두를 달리는 이들이 지지율 정체상태에 빠진 것은 확장성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백화점식 공약 나열이나 조직 확대 등의 기존 방식보다 온라인 여론을 주도할 창의적인 공략법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진보·보수 성향뿐 아니라 세대별로도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며 분화 중이다. 각 진영 내에서도 커뮤니티별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경선 결과를 놓고 서로 과도한 비난이 오가기도 한다. 여야가 대선 본선무대에서 ‘원팀’을 꾸릴 때 경선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온라인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백상진 정치부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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