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학교 지키는데 10시간 휴식시간 처리

박장군 2021. 10.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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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 ① 24시간 일해도 근로시간은 6시간
학교 당직노동자 김동규(가명·61)씨는 CCTV·화재 경보장치 등 보안설비와 침대 같은 생활필수품이 함께 들어찬 5평(16.5㎡) 남짓 당직실에서 쉰다. 잠들기 전 TV나 책을 보기도 하지만, 보안설비 모니터로 계속 눈이 간다고 했다. 사진은 관제실에서 CCTV 화면을 감시 중인 한 남성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학교는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해. 일하다가 쓰러져봐, 교장이 장사 치러야 하잖아.”

박동환(가명·80)씨는 서울 한 초등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다. 은퇴 뒤 30년 넘는 공무원 경력을 살려 말단 사무직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찾아주는 곳이 없었다. 당장 돈이 궁한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15년을 쉬었다. 동년배 친구 소개로 딱 1년만 일해 보겠다고 시작한 지금의 일을 5년째 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용역회사 소속 당직 노동자가 될 때만 해도 하루 4~5시간 일하는 소일거리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계약한 4~5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휴식 시간으로 알았지만 휴식 중에도 일은 계속됐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자다가도 일어나 순찰하러 가는 등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었다. 평일 오후 4시30분 출근해 다음 날 오전 8시30분까지 학교를 지켜도 근무 시간은 4시간반만 인정됐다. 24시간 학교에 붙어 있는 주말엔 6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돈만 받는다. 한 달 중 보름을 일하고 받는 급여는 90만원 남짓이다. 근무 일정으로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렵다.

동료들도 이상한 휴식 제도, 근로 시간 인정 문제에 공감했지만 “나이 먹고 그러려니 하라”며 “그냥 체념하고 살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짬이 날 때마다 관련 법 조항과 서류를 들춰가며 부당함의 이유를 찾아 나섰다. 일을 병행하면서 학교와 서울시교육청, 고용노동부를 찾아 항의하다 보니 어느덧 5년이 지났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현행법상 박씨와 같은 학교 당직, 아파트 경비원 등은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심신의 피로가 적고 휴게나 대기시간이 많은 노동자로 분류돼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을 받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근무를 하고도 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이유다.

박씨는 공무직으로 전환된 뒤 상황이 더 나빠졌다. 정부는 용역회사 소속 파견직이던 이들을 2018년 9월 공무직으로 전환했지만, 정년을 만 65세로 제한했다. 전환 당시 65세가 넘은 이들은 1∼5년의 고용 유예기간을 뒀다. 이 기간이 끝나면 해고되거나 다시 용역회사 간접고용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박씨도 2018년 전환 뒤 1년간 공무직으로 일했다. 하지만 학교의 직접고용을 포기하고 다시 간접고용을 자원해 같은 학교에서 일한다. 공무직 연장을 앞두고 학교에서 온갖 핀잔과 눈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가족의 만류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 노년 일자리에 대한 부당 대우가 바뀌는 것도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그는 “자식들은 ‘아버지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왜 그러시냐’고 말리지만, 죽을 때까지 재밌게 일하려면 꼭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많이 달라’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아니다. 일한 만큼 인정해 달라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중학교 당직 노동자가 지난달 30일 좁은 당직실에 앉아 시설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제공


지난 9월 30일 오후 4시. 김동규(가명·61)씨가 인천의 한 중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남들이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에 김씨의 업무는 시작된다. 그는 2학기 들어 등교가 확대된 학교 구석구석을 지키는 당직노동자다. 학생·교사가 떠난 학교는 고요했지만 김씨의 업무 시간은 온갖 잡무와 긴장감으로 빈 틈이 없다.

오후 5시. 김씨의 첫 순찰 시간이다. 4층 본관, 3층 구관 건물부터 운동장까지 학교 곳곳이 순찰 구역이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게 첫 순찰 임무다. 1시간 남짓 학교 구석 구석을 돌아본 뒤 당직실 전기밥솥에 저녁밥을 안친 김씨는 숨 돌릴 틈 없이 2차 순찰에 나섰다. 이번에는 학교 내 18개 사무실의 전등과 에어컨을 끄고 창문이 잘 닫혔는지, 누수는 없는지 확인해 보안점검표를 작성했다. 단순 업무지만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졌다. 학교 입구에 설치된 체온 감지용 열화상 카메라가 잘 작동하는지 살피고 외부인들을 통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학교를 한 바퀴 더 돌고 나면 오후 8시가 된다. 김씨는 그제야 한숨 돌리며 저녁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마른 찬에 간단한 국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다.

식사 뒤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는 휴식시간이다. 김씨는 이를 “무늬만 휴식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일하고 쉬는 5평(16.5㎡) 남짓 당직실엔 접이식 야전침대·냉장고·전자레인지·전기밥솥·TV 등 생활필수품과 함께 CCTV·화재 경보장치·방송 등 보안설비가 있다. 그는 잠들기 전 TV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낡은 건물이 신경 쓰여 보안설비 모니터로 계속 눈을 옮길 수밖에 없다.

눈을 붙여보지만 쪽잠의 연속이다. 김씨는 “긴장 상태에서 대여섯 시간 선잠을 자고 오전 5시에 깬다”며 “도중에 경보가 울리거나 하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최근에도 새벽녘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소방관까지 출동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김씨의 근로시간은 평일 학교에 있는 16시간 중 6시간만 인정되고, 나머지 10시간은 휴식시간으로 처리된다. 24시간 당직을 서는 주말도 15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그는 “분명 쉬는 게 아닌데 휴식 시간이라고 한다”며 “국가가 내 휴식 시간을 빼앗는 기분”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이렇게 한 달 중 15일을 일하고 90만원가량을 받는다.

각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김씨와 같은 학교당직노동자는 서울 1300∼1400명, 경기 2000여명, 인천 600여명이다. 학교 규모나 상황에 따라 1∼2시간 차이가 있을 뿐 근무·휴식시간 비율은 판박이다. 휴식 시간을 온전히 쉴 수 없는 전국 학교 당직노동자들의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대기업 간부로 일하다 퇴직한 김씨는 스스로를 “운 좋게 재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자평해왔다. 하지만 일을 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그는 “정부 기관도 이런데, 용역회사 등 소규모 업체들은 더 열악할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어 “주위에선 ‘그냥 쉬지, 뭐하러 돈을 버냐’고 하는데 그냥 일하는 게 좋다”며 “많은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은퇴해서도 상식선에서 할 만한 일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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