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탄소 배출 많다고 전력 차단.. 中 지방 정부 '관료주의의 그늘'

권지혜 2021. 10. 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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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동부 랴오닝성 선양의 한 식당에서 지난달 29일 한 손님이 정전으로 스마트폰 손전등을 사용해 불을 비추며 국수를 먹고 있다. 냉난방철도 아닌 가을에 불어닥친 중국 전력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제 석탄 가격 상승도,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도 아닌 지방정부의 형식적 관료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P뉴시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 파산설로 어수선했던 중국이 이번엔 전력난에 휘청이고 있다. 중국의 전력 부족 사태가 계속돼 공장 가동 중단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겨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진짜 위기는 헝다 사태가 아니라 전력난”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전력난은 수출 호황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발전용 석탄 공급 부족, 국제 석탄 가격 상승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 정부의 에너지 저감 정책에 지방 정부가 구시대적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최근 전력난이 불거진 배경으로 지방 정부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꼽았다. 지방 정부가 에너지와 산업 구조를 전환하는 대신 급한 대로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과 업종에 대해 전력 공급을 중단해버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감축 목표 맞추려 극단 조치”

탄소 배출량 감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언급한 최우선 정책 과제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이 2030년 탄소 배출량 정점을 찍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탄소 중립은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그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14·5계획) 기간 에너지 소비 총량을 13.5%, 탄소가스 배출량을 18%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정책의 근본 취지는 탄소 배출이 많은 화력 발전을 줄이고 산업 구조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 정부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발단이 된 건 중국 거시경제 사령탑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지난 8월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각 지역의 에너지 소비 강도 및 총량 통제 목표 달성 상황 통지’다. 이에 따르면 칭하이, 닝샤, 광시, 광둥, 푸젠, 신장, 윈난, 산시(陝西), 장쑤 등 9개 성(省)급 지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소모량이 줄기는커녕 되려 늘어 1급 경고를 받았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저장, 허난, 간쑤, 쓰촨, 안후이, 구이저우, 산시(山西), 헤이룽장, 랴오닝, 장시 10개 지역엔 2급 경고가 내려졌다. 에너지 소비 총량 부문에서도 총 13개 성급 지역이 1, 2급 경고를 받았다. 최근 공장 가동 중단이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진 지역들이다.

발개위는 “본 통지가 공표된 날부터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는 지역은 국가 계획 배치의 중대 항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달 추가로 ‘에너지 소비 강도와 총량 제도 보완 방안’을 내놨다. 여기엔 “재생 에너지 사용으로 화석 에너지 소비를 중점적으로 억제한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지역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지역은 처벌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베이징 소식통은 3일 “발개위의 지침에 각 지방 정부가 전력 공급을 제한하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국이 지난해 10월 외교 갈등을 겪고 있는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바람에 전력난이 가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이 전력난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중국의 연간 발전용 석탄 소비량은 30억t 이상으로 그 중 수입량은 7% 불과하다. 호주산 석탄은 중국 석탄 수입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에너지 소비구조를 보면 석탄이 약 6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력 생산 중 화력 발전 비중은 70%가 넘는다. 반면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아직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겨울철 난방 걱정에 中경제 복병 가능성

중국 당국은 올겨울 난방용 전력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에너지 분야를 담당하는 한정 부총리는 지난주 국영 에너지 기업들을 불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가 운영에 충분한 연료를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신바오안 회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긴급회의에서 “전력 공급 업무가 가장 중요하고도 긴박한 정치적 임무가 됐다”며 민생 전력 공급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실제로 겨울철 난방 수요가 많은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등 동북 3성 지역에선 전력 공급이 딸려 도로 신호등과 가로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 일대 전력난은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크다. 동북 3성을 포함한 중국 북부 지역은 정부 통제하에 도시 전체가 중앙난방을 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제조업의 허브로 꼽히는 광둥성은 이달 1일부터 오전 10시부터 정오, 오후 2~7시 피크타임 산업 전기료를 25% 인상했다. 이런 조치가 다른 지역으로, 또 가정용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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