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주 향하는 백승호 "다시 단 태극마크, 의미 남다른 이유는.."

조효석 2021. 10. 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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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제공

백승호의 이력은 겨우 만 24세 나이에도 부침이 심하다. 어릴 적 그는 이승우·장결희와 함께 스페인 라리가 명문 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유소년 3인방’으로 꼽히며 축구팬들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1군 데뷔 문턱까지 갔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팀을 떠났고 이후 스페인과 독일 2부 리그에서 뛰었다.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혹한 평가가 뒤따랐다. 국내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고,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면서 한국에 돌아온 가장 큰 목적마저 이루지 못했다.

요즘 그의 축구는 다시 꽃피우고 있다. K리그1 디펜딩챔피언 전북 현대 미드필드 중심축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선수경력 첫 우승을 노리는 중이다. 전북은 지난 2일 강원 FC와의 경기를 한 명 퇴장당한 상황에서도 승리했다. 헌신적인 플레이로 중원을 지킨 백승호가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결과다. 최근 여세를 몰아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그는 4일 파울루 벤투 감독이 기다릴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로 향한다. 국민일보는 강원전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대표팀이라는 좁은 문

대한축구협회 제공

“사실 명단 발표 때는 자고 있었어요. 정말 될지 몰랐거든요.” 벤투 감독이 지난 27일 2022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이란전 소집명단을 발표했을 당시 그의 이름이 명단에 들어있을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는 앞선 여름에 열린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을뿐더러, 성인 대표팀에 불려간 것도 2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먼저 소식을 접한 부모님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됐다”면서 소집 소식을 알렸다.

어릴 적부터 해외 생활을 한 선수에게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은 필연적이다. 백승호와 그 가족에게 이번 대표팀 발탁의 의미가 유독 남다른 이유다. 전주 시내에서 자취하고 있지만, 4일 전주에서 NFC로 향할 때 그는 부모님과 동행할 예정이다. 그는 “아무래도 부모님께도 의미가 크다. 그간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프랑스와 미국에 떨어져 지내는 다섯 살, 일곱 살 차이 누나들도 막둥이 동생에게 축하를 보내줬다.

물론 가장 감개무량한 건 당사자다. 그는 “어릴 적 연령별 대표팀에 갔을 때, 너무 옛날이라 어떤 감독님인지 기억 안 나지만 해주신 말씀 중 잊히지 않는 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감독님이 선수들을 모아 놓고 ‘여기 선수들이 다 국가대표 되는 게 아니다. 가더라도 한두 명 갈까말까다.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했다. 지금 보면 그때 같이한 선수가 대표팀에 거의 없다. 선수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를 일이고, 또 그렇게 뽑히기 어려운 무대라는 걸 체감한다. 그래서 의미도, 느끼는 바도 크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백승호는 파주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도 현 대표팀에 꽤 많다. 백승호는 “인범이 형(황인범), 희찬이 형(황희찬), 민재 형(김민재)도 그렇고, 전부터 친했던 형들이 제가 대표팀 다시 되어서 좋다고 연락해줬다. 그전에도 한국에서 잘하고 있다며 응원해주던 형들”이라고 했다. 그는 정우영, 황인범이 버틴 3선에 뛸 가능성이 크다. 그는 “대표팀에서 워낙 (같은 포지션) 형들이 잘해주고 있다. 최대한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준비 잘해가야 경기에서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귀환, 좌절과 회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가 스페인에서 뛰려 한국을 떠난 건 2010년, 무려 11년 전이다. 길었던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가장 큰 동기는 물론 올림픽이다. 백승호는 “한국에 온 이유 70~80%는 올림픽이었다”고 했다. 에이전트가 다시 유럽에 돌아가기 쉽지 않다며 한국에 가는 걸 반대했지만, 그런 가능성도 무릅쓸 만큼 중요한 목표였다. 그는 “경기 뛰면서 (기량을) 보여주려고 돌아온 건데 (올림픽 선수단에 들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힘들긴 했다”고 복기했다.

유럽에서 긴 시간 겪은 어려움이 오히려 제자리를 빠르게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회복탄력성’이 단련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는 “워낙 유럽에서 경기에도 못 뛰고 명단조차 못 오르고 했던 시기가 많았다. 그때 스스로 너무 힘들어해봤자 도움이 안 됐다”면서 “바로 받아들이고, 빨리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괜찮은 경기도 나왔다”고 했다.

그가 전북으로 간 건 가장 강한 팀에서 뛰고 싶어서였다. 전북에서 그는 유럽에서조차 경험 못했을 정도로 강한 승부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일단 이겨야 한다는 게 크다. 겪어본 다른 해외 팀들과 비교해도 부담감, 정신력 모두 다르다”면서 “이겨야 한다는 마음가짐,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다.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보니 우승하고 싶어서 팀을 위해 더 희생하려는 마음도 든다. 내가 돋보이기보단 팀이 이기는 것에 무게중심이 많이 실린다”고 했다.

그는 전북에서 가장 기억나는 경기로 데뷔전이던 4월 인천 유나이티드전과 데뷔골을 넣은 6월 성남 FC전 두 경기를 꼽았다. 그는 “처음 인천전에서 데뷔했을 때는 아, 이제 이곳이 내 집이구나 싶었다. 힘든 상황에 믿고 영입해준 데 대한 고마움이 컸다”고 했다. 이어 “성남전 때 첫 골을 넣고 나서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좋았다. 그전까지는 제가 뛰는 동안에도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백승호는 요즘 인터뷰에서 전북에서의 생활을 말할 때마다 ‘형들’의 배려를 자주 언급한다. 유럽 생활을 하며 겪어보지 못한 따뜻함을 팀에서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유럽에 있을 땐 많이 외로웠다”면서 “처음 갔을 때는 (같은 팀이) 일부러 패스도 안 주고 할 때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런 일이 없어졌고 언어도 2~3년 뒤엔 괜찮아졌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게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전북에 오고서 선수로서도 겪었던 어려움이 해소되는 게 있다. 365일 한국말을 하는 자체가 그렇다”며 웃었다.

데뷔골도 그런 배려 끝에 나온 결과다. 백승호는 “유럽에서 뛸 때도 가끔 프리킥을 차긴 했지만 전담한 적은 없다. 전북에서는 형들이 기회를 줘서 차게 된 것”이라면서 “형들에게서 얻는 게 많다”고 했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그는 전북에서 우승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백승호는 “내년 아시안게임이 있지만 아직은 생각하기 너무 이르다. 일단 전북에서 우승까지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다. 선수경력에서 첫 우승을 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크다”고 했다.

응원과 비난

전북 현대 미드필더 백승호가 지난달 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의 경기 중 득점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어린 시절 백승호만한 관심을 받았던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언론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고, 받았던 응원만큼 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사자로서 느꼈던 점을 묻자 인터뷰 내내 나이에 비해 차분하고 조심스럽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스페인에서 뛸 때는) 기사가 나더라도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냥 또 났구나, 했다.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받은 관심이 성인이 되니 마지막엔 적으로 돌아왔다. 기대를 받지 않던 선수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라고 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과한 관심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한 그는 “저도 지금 잘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노력해서 발전해 나가려 하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어릴 때 아무리 잘해도 결국 성인이 되어 어떻게 잘하느냐가 결과”라고 했다. 어린 나이부터 과한 관심을 받다 보면 선수로서 금방 대단한 성취를 내놓지 못했을 때 몇 배 심한 비난이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는 “관심은 좋지만 어릴 때부터 너무 기사가 쏟아지고 하다 보면 독이 된다”며 “적당한 관심과 응원이 어릴 땐 가장 좋다”고 했다.

대표팀은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쏟아지는 자리다. 몰라보게 성장한 백승호는 그런 부담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간 대표팀 경기를 빠짐없이 챙겨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보곤 했다. 그는 “출전이 보장된 게 아니니 일단 기회를 받도록 잘 준비하는 게 우선”이라며 “2선이든 3선이든 자신 있다”고 했다. 그는 “그간 믿고 응원해준 팬들 덕에 열심히 뛰려고 하다 보니 이런 좋은 일도 생겼다. 앞으로도 응원해주시면 준비 잘해서 경기장에서 보답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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