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빈민가 흑인의 길라잡이가 되다

2021. 10. 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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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기 목사의 '디아스포라를 통한 하나님의 선교' <24>
미국 필라안디옥교회 성도들이 2019년 필라델피아 흑인 빈민가의 도로에서 개최한 청소년 캠프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BC 722년 앗수르에 망했다. 앗수르 왕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을 포로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땅에 우상 숭배자들을 이주시켰다. 수많은 디아스포라가 생겼다. 그런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 사마리아인들은 자연히 피도 종교도 섞였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상도 함께 섬기며 사는 영적인 혼합주의자들이 되었다.(왕하 17장)

그래서 정통성을 주장하는 남왕국 유대 백성들의 증오 대상이 됐다. 그 후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시대에 사마리아의 통치자 산발랏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의 성전건축과 성벽 재건을 방해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복되는 증오와 차별은 대물림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부러 그 지역을 피해 돌아가곤 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셨다. 절망 속에 살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의 복음을 전해 그를 살렸다. 또한, 그 여인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영적 대부흥이 일어났다.(요 4장)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하여 사마리아성을 통과하려 할 때 유대인을 증오하던 저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도록 명하여 저들을 멸하기를 원했다.(눅 9:54)

예수님이 복음의 씨를 뿌렸던 사마리아성에 예수님 승천 후 빌립이 복음을 들고 들어가 추수를 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6) 예수님이 뿌리신 곳에서 빌립은 거두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받고 세례받았다는 소식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원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 받기 위해 안수해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사마리아 사람을 증오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받아 저들을 사랑으로 품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흑인은 한편으로는 사랑, 또 한편으로는 증오의 대상이다. 애증의 교차점에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마리아 사람이다. 흑인의 역사는 백인들에 의한 백인들을 위한 노예로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강제로 끌려와 미국 땅에 뿌려지고 심겨진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한인들은 흑인들의 오랜 환난과 고난의 역사를 보며,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이 일어난 최근까지 저들의 고통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들 편에서 ‘흑인들의 생명도 귀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함께 외쳤다. 그런데 그들이 백인에게 고통당할 때마다 소수 약자인 한인들은 항상 희생양이 돼 왔다. 저들은 한인 상가를 약탈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정말 함께하기 싫은 이 시대의 사마리아인이다.

이태후 선교사는 서울대 출신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대원에서 유학한 세계전문인선교회(PGM) 소속 목회자다. 18년째 필라델피아 도심의 빈민가 흑인 지역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곳은 하루에도 30여발의 살인 총성이 울리는 지역이다. 낮에 흑인이 아닌 우리 같은 이방인은 들어가면 안 되는 5대 우범지역 중 한 곳이다.

이 선교사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성을 찾아 들어가셨듯 빌립이 그 성으로 흩어져 들어갔듯 최고 우범지역 흑인의 삶에 들어간 것이다. 이곳에 사는 흑인 아이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다. 반 정도는 총에 맞아 죽었다. 반 정도는 마약과 연관돼 감옥에 가 있다. 아이들은 출구 없는 이 게토에서, 창살 없는 감옥에서 그들의 아버지가 그랬듯 마약에 노출돼 산다.

가장 값이 싼 크랙이란 마약은 어린아이가 몇 그램만 가지고 있어도 중범죄인이 된다. 어른들은 투표권도 박탈당한다. 이처럼 소망 없이 사는 이 시대의 사마리아인 속에 한국인이 들어갔다. 자신의 모든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랑의 디아스포라가 돼 들어간 것이다.

이 선교사는 처음 들어가 마을 청소부터 했다. 집마다 문 앞에 화분을 갖다 놨다. 여름이면 어린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열었다. 몇 주 동안 길거리를 막고 잔치를 열었다. 미국 각 지역 교회에서 온 단기선교팀의 복음전파와 다양한 섬김으로 죽어가던 빈민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국인 선교사가 흑인 동네의 존경받는 목사가 됐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애경사에 이 선교사를 부른다. 이 선교사의 헌신된 삶을 통해 꿈과 비전이 회복된 청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이 선교사는 말한다. “예수 믿는 것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에만 목적을 둬선 안 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지옥 같은 흑인 빈민 우범지역도 천국 같은 곳이 되도록 변화시킵니다. 내가 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최대한 잘 썩어지는 밀알이 돼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삶입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에 의한 디아스포라를 향한 디아스포라의 선교, 즉 하나님의 선교다.

호성기 미국 필라안디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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