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중국에 당한 호주 미국에 밀착, 아시아 안보 지형 바뀐다
"중국 패권 추구 단념시키는 조치"
"한국 등 비핵국도 타진 가능성"
1958년 7월 미국과 영국이 ‘상호 방위 목적의 원자력 이용 협력 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스푸트니크 쇼크’가 있었다. 그 전해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자 과학 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위기감이 커지자 미국은 대서양 건너 영국과 손잡았다. 공동의 적 소련에 맞서기 위해 핵 기술을 공유하기로 했다. 미국은 54년 세계 최초 핵 추진 잠수함 USS 노틸러스(Nautilus) 개발에 성공한 터였다. 협정 덕분에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자로 기술을 전수받아 핵 잠수함 건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로부터 63년 만에 미국이 다시 한번 핵 잠수함 기술을 다른 나라에 넘기기로 했다. 지난달 15일 미국과 영국ㆍ호주 3국 정상이 발표한 새로운 안보동맹 ‘오커스(Aukus)’에 따라 호주는 미ㆍ영으로부터 핵 잠수함을 공급받게 됐다. 이들을 뭉치게 한 21세기 공동의 적은 중국이다.
오커스 출범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63년 만에 핵 기술 이전을 결심할 정도로 중국과 경쟁이 격화되자, 대중 견제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의미에서다.
호주에 핵 잠수함 최소 8척을 판매하는 것은 무기 거래로서 규모도 크지만, 전략적 가치는 더욱 크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인도ㆍ태평양에서 보인,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가장 극적이고 결연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왈트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미래에 역내 헤게모니를 노리는 시도를 단념시키거나 좌절시키기 위해 설계된 조치”라고 풀이했다. 다만, 미ㆍ중간 해상에서 힘의 균형 변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침략을 억제하려면 미국과 동맹이 72시간 안에 모든 중국 배를 침몰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된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의 포린어페어 기고였다.
플러노이는 “미군이 72시간 안에 남중국해상 모든 중국 군함, 잠수함, 상선을 침몰시킬 수 있다고 믿을만한 위협을 가할 수 있으면, 중국 지도자들은 예컨대 봉쇄나 대만 침략을 감행하기 전에 재고할 것”이라며 “함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주가 핵 잠수함을 갖게 되면 미국은 아시아에 함대를 증강하는 효과를 얻는다. 대중 견제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고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마이클 슈브리지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핵 잠수함은) 매우 강력한 타격 무기이기 때문에 인도ㆍ태평양에서 장기적인 군사적 균형을 재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미국은 핵 잠수함 52척, 중국은 7척을 보유하고 있다. 호주가 2030년께 핵 잠수함 8척을 보유하게 되면 단숨에 중국을 능가한다. 호주 국방부는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과 비교해 잠행 능력, 속도, 기동성, 생존성이 월등하며, 작전 지속성은 거의 무한대"라고 밝혔다.
호주 서부 퍼스 기지에서 출발한 잠수함이 남중국해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기 태세를 유지하는 기간이 핵 잠수함은 77일, 재래식 잠수함은 11일로 추산된다.(이코노미스트) 호주가 2016년 프랑스와 맺은 디젤 잠수함 12대 공급 계약을 파기하고 미국의 핵 잠수함을 택한 가장 큰 이유다.
호주는 5G 통신사업에서 중국 기업 화웨이 참여를 배제하고, 중국의 코로나19 기원과 책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 중국과 갈등을 빚었다. 중국으로부터 전방위 경제 보복에 시달리다가 미국과 안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기로 결심하면서 세계 7번째 핵 잠수함 보유국을 예약했다. 핵보유국이 아닌 나라 중에선 유일하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고립을 피하기 위해 태평양 진출 필요성이 커진 영국도 오커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영국에서 잠수함 일부가 건조될 경우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는 미국이 동맹의 “등에 칼을 꽂았다”(장이브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고 반발하면서 “우리는 태평양 국가”(에마뉘엘 르냉 인도 주재 프랑스대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인도ㆍ태평양 지역 내 영토가 있고, 프랑스인 200만 명이 거주하며, 군인 7000명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중국 견제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던 프랑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인도ㆍ태평양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가능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와 영국이 쿼드(Quad)에 합류할 가능성을 예상했다. 미국·호주·일본·인도 4개국 안보회의체인 쿼드에 영국과 프랑스가 합류해 ‘쿼드+2’가 되면 오커스와 쿼드, 프랑스가 일치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쿼드 일원인 일본이 오커스 동참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일본이 오커스를 신속히 승인했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데다 호주와 안보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잠수함 관련 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핵 기술 확산을 막으려는 국제사회 노력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FP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협정은 ‘판도라의 핵확산 상자’를 여는 것일 수 있다”면서 한국·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핵무기 비보유국에 무기급 연료를 얻을 수 있는 핵 잠수함 구매를 권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호주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오커스, 쿼드와 파이브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의 정보 동맹)에 유일하게 모두 참여한다. 유럽 국가들이 쿼드에 합류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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