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아내 사랑, 아내 자랑
검사 시절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장면 중 하나가 ‘애처가 새신랑’이다. 2012~2013년 신혼이던 그가 오후 6시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 앞에서 택시를 타고 ‘땡퇴’하던 모습을 가끔 목격했다. 한 손에 어김없이 부인에게 줄 무언가가 담긴 쇼핑백 같은 걸 덜렁덜렁 든 채로(언젠가 내용물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먹을 것”으로 기억한다). 서슬퍼런 중앙지검 특수1부장(현재의 반부패수사1부장)도 늦게 만난 띠동갑 부인 좋은 걸 못 숨기는구나 싶어, 머쓱해 하는 그를 두고 법조 말진 기자들이 한참을 키득거렸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아내 사랑으로는 뒤지지 않는 듯하다. 김혜경씨는 지난달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남편이 집에서는 을이고 내가 갑”이라면서 “집안에서 나를 변명해 줄 때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나서서 (편들기를) 해준다”고 밝혔다. 말 안 해도 시댁에 알아서 내 편을 들어주는 ‘남의 편’이라니. 이 지사는 TV토론에서 가상 생활기록부에 ‘이상형=김혜경’이라고 썼다. “인생사를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아내를 만난 일”이라는 그의 고백에 김씨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웃었다.
아끼는 아내가 너무 소중해서일까. 두 사람이 최근 방영된 대선 후보 예능(SBS ‘집사부일체’)에서 굳이 배우자 모습을 숨긴 건 그들의 사랑 지수에 영 비례하지 않는 느낌이다.
연예인들이 집으로 찾아가 생활 공간을 공개하는 콘셉트인데도 이들은 약간의 흔적과 언급으로만 어렴풋이 부인의 존재를 내비쳤다. 윤 전 총장은 출연진에게 직접 밥을 해 먹이면서도 식탁에 안주인을 등장시키지 않았고, 이 지사는 경기 수원 공관과 분당 사택을 전부 뒤로한 채 경북 안동까지 홀로 낙향해 촬영했다.
대선 레이스가 무르익어가는 시점에 티끌만 한 논란의 여지도 가급적 사전 차단하겠다는 캠프 차원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 여야 1위 주자의 부인들에게 무슨 논란의 여지가…. 이 지사를 한동안 괴롭혔던 여배우 관련 ‘바지’ 발언과, 윤 전 총장이 펄쩍 뛴다는 김건희씨의 ‘쥴리’ 의혹은 이미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는 밥상머리 민심의 주요 화제 아니던가. 감춰서 잦아들기엔 늦었고, 당당하다면 오히려 다 드러내놓고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여야의 간판급 ‘사이다 남편’을 둔 여성들답지 않게 극도로 숨죽이고 장막 뒤에 감추려는 모습에 오히려 의아함을 느끼는 유권자가 적잖다. 지난 3일, 같은 프로엔 이상형 빈칸에 ‘나탈리 우드’를 써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출연했다. 부인과 함께 요리를 해 먹고 손주와 오손도손 영상 통화를 했다. 지지율과 아내 자랑도 비례하진 않는 모양이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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