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어떤 세상에서 살 것인가

유상철 2021. 10. 4. 0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중 다툼에 따라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되나
중국이 승리하면 중국 중심의 세계사 등장
소국이 대국 따르는 21세기판 조공제도 부활도
'안미경중' 잣대로 미·중 싸움 보는 건 너무 안이

미·중 갈등은 이제 총만 쏘지 않을 뿐 사실상 전쟁에 가깝다. 패권경쟁이라 불리는 이 싸움을 세계는 불안한 눈으로 바라본다. 고래들 싸움에 행여 등이 터질까 걱정하는 새우 신세 나라가 75개나 된다고 한다. 우리도 그중 하나다. 자칫 고래들 눈 밖에 날까 봐 노심초사 또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다.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며 두 나라 모두와 잘 지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조 바이든 미 정부는 반중(反中) 동맹 규합에 나서고 있고, 중국은 그럴 경우 후환(後患)이 따를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장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모습. [AFP=뉴스1]

세상 모두 ‘어느 편에 서야 하나(選邊站)’ 문제로 고민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은 나라는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 중국과의 수교 30주년을 맞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때 생각해볼 게 하나 있다. 미·중 패권전쟁의 결과에 따라 이뤄질 미래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세계 넘버원의 자리를 지킨다면 미래는 아마도 지금 사는 세상과 큰 변화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중국이 새로운 패자(覇者)로 등극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총만 쏘지 않을 뿐 사실상 전쟁에 가까운 미중 패권 다툼은 세계 각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와 관련해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참고할만한 서적이 하나 나와 있다. 영국의 마틴 자크가 펴낸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펼쳐질 17가지 변화를 예언했다. 첫 번째로 “중국 중심의 세계사가 등장해 중국 역사가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변화는 “세계의 수도가 뉴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며 앞으로 세계는 베이징의 시각에 시계를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할 경우 펼쳐질 미래가 한국에 새로운 조공제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갖게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다른 변화는 국가 간의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중국이 우월하며 중국의 규모가 크다는 걸 세계 모든 나라가 인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공(朝貢)제도가 돌아올 것이라고 자크는 봤다. 그는 또 서구의 대안으로 등장하게 될 중국식 정치와 관련해 “국가가 중심이 되지만 시민사회는 덜 중시되며 권위주의적 유교 전통에 의한 통치가 선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크의 전망은 중국의 부상을 다분히 긍정적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그의 분석이 2010년께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당시엔 세계가 중국의 굴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한국전쟁 영화 '장진호'가 지난달 30일 중국에서 개봉돼 중국 애국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그러나 시진핑(習近平)이 리더가 된 이후의 중국은 속 좁은 ‘애국주의(愛國主義)’에 기반을 둔 여러 거친 행태를 보여주며 세상 사람들이 중국 주도의 미래상에 우려를 갖게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선 우리와 관련된 것만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역사부터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에선 지난달 30일 개봉한 한국전쟁 소재의 영화 ‘장진호’가 인기다. 한데 이 한국전쟁을 중국인권위원회는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규정한다. 북한남침 사실은 쏙 빼고 있다. 중국에선 또 윤동주가 중국 조선족으로 표기되고, 김치도 ‘중국 음식’으로 선전되는 판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릴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당국자는 “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판 조공제도’가 도래할 게 뻔하다.

중국 정부의 민영기업 군기 잡기가 한창이다. 중국판 우버라 불리는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은 지난 6월 말 미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의 교통 데이터를 해외에 유출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식 권위주의에 의한 사회 지배 역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중국은 기술을 인류의 발전을 위해 쓴다기보다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디지털 레닌주의’가 그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게 되면 펼쳐질 이런 미래상에 대한 전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미·중 패권경쟁을 우리가 ‘안미경중’의 입장에서만 살핀다는 게 혹시 너무 안이한 자세는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미·중 싸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세상의 마음을 얻어 미국을 이기려면 이웃 나라가 이런 우려를 한다는 사실부터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유상철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