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남의 퍼스펙티브] AI 시대, 기업은 감성·인성 갖춘 사람 원해

2021. 10. 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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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스쿨 석좌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마켓 5.0』에서 “마케팅의 목적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업이란 돈을 많이 벌어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통념을 깬 그의 견해는 따뜻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 5월 말 한 언론사가 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코틀러 교수와 나는 영상으로 실시간 대담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마켓 5.0』개념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오늘날 앞선 기술 덕분에 속도와 효율은 향상되었지만, 부작용으로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기술의 혜택이 계층 간에 균형 있게 돌아가게 하려면 인간의 지혜와 융통성, 공감 능력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휴머니티를 지향하면서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마케팅 전략을 펼치자는 것이 『마켓 5.0』 개념의 골자다.

「 감성·인성 훌륭해야 소비자 기호 충족에 충실할 수 있어
배려·공감능력·협동심·인내 등은 AI가 대신할 수 없어
어릴 적부터 그런 역량 키우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
교육은 어떻게 시장 요구에 부응해야 할까 고민할 때

능력·흥미 외면, 획일화된 한국 교육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2차 산업혁명 때까지만 해도 물건만 좋으면 얼마든지 잘 팔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공급할 물건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효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세월이 가면서 기업 경영의 초점이 품질은 기본이고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가야 하는 쪽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이는 3차 산업혁명을 지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한층 더 분명해졌다.

코틀러 교수의 신개념 『마켓 5.0』은 이 같은 시장의 새로운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켓 5.0』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개별 소비자와 1대 1의 입장에서 마케팅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처럼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신의 선호도를 뚜렷이 드러내 보이는 소비자층을 겨냥하기에 유용하다. 오늘날 시장은 이렇듯 빠르게 새로운 물결을 타고 있고 그만큼 기업에 대해 변신을 요구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데 기업을 이끄는 힘은 기업 구성원들의 자질이나 태도에서 나온다. 또 이들의 자질이나 태도는 많은 부분 교육에 의해 길러진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육은 시장의 새로운 요구에 잘 부응하고 있는가? 먼저 우리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국어·영어·수학·암기 과목 등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수업 방식은 개인별 능력과 흥미에 맞추기보다는 획일화되어 있다.

사실 물건을 효율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던 시대에는 분업 역할을 할 인력 공급이 가장 중요했다. 또 그들에게 읽고 쓰고 계산하는 등의 기본적인 능력을 획일적으로 가르쳐 산업 현장에 공급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기술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러한 교육과정으로는 창의력이나 리더십을 배양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창의력·리더십 배양하는 교육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학·읽기 등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상위권이다. 그렇지만 우리 학생들의 주당 학습 시간은 OECD 평균인 34시간보다 15시간이나 많은 49시간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효율에 대한 논란을 불러오게 한다. 더구나 영어나 수학 공부는 이제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가령 AI 영어 학습 앱 듀오링고는 학습자와 1대 1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하는데 그 성취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일본의 큐비나 아카데미 수학학원은 AI를 활용해 개인별 지도를 한 덕분에 학습 속도는 빨라지고 성적 향상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 공부를 등한시해도 좋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효율을 더 높이면서 창의력이나 리더십 배양이 이루어지도록 교과과정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지식과 기술의 수명 주기는 짧아져만 간다. 이런 여건에서는 전공 지식이나 기술이 짧은 시간에 무용지물이 되거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밀려날 수도 있다. 더는 한두 가지 전공 지식을 갖고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만큼 우리의 교육 제도와 과정도 학생들의 전공이나 지식 분야를 다양화하고 졸업 후에도 평생 학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개편할 필요가 있다.

미래 직업에 쓸모없는 지식 배워

또 기업 구성원들의 능력이나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개개인의 감성이나 인성에 의해 좌우된다. 코틀러 교수는 『마켓 5.0』에서 이 같은 감성과 인성의 중요성도 역설하고 있다. 기업 구성원들의 감성과 인성이 훌륭할수록 개별 소비자의 기호 충족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려·공감능력·협동심·인내 등의 감성과 인성은 AI 등과 같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워서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부터 늘 그 역량을 키우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교육도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은 물론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역할 외에 순수 학문의 발전에도 기여해야 하겠지만 교육 목표 중 하나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이라고 한다면 이를 충족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몇 년 전 방한했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은 수많은 청소년이 하루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는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얻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급변하는 세태에 전대미문의 코로나19마저 겹쳤다. 엄청나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는 이제 교육은 어떻게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까를 고민할 때다.

■ 초중고에서 21세기 필수 언어 코딩을 가르치자

「 1945년 우리나라의 해방 당시 성인 가운데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인 문맹률은 78%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 연유로 1948년 5월 10일 총선 때는 국회의원 후보 번호를 아라비아 숫자 대신 작대기로 표시하기도 했다. 다행히 배우기 쉬운 한글 덕분에 문맹률은 크게 낮아져서 이제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한글을 깨치는 것만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literacy)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문맹률이 제로에 가깝기는 하지만 문해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3분의 1 정도는 문맹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요즘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이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처럼 ‘디지털 정보 체계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데는 코딩(coding) 교육이 기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컴퓨터가 소프트웨어 없이는 기계 상자에 불과한 것처럼, 코딩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컴퓨터가 움직이는 방법을 설계하는 일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코딩 교육은 미국의 미래라면서 ‘Hour of Code’ 캠페인을 통해 하루 한 시간은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영국과 인도도 전 국민의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코딩 교육에 부심하고 있다.

과거 우리가 문해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이제는 코딩 교육을 통해 컴퓨터와의 소통 능력을 길러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중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고 한다. 필자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J A Korea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소외계층 학생들의 코딩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7년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중·고등학생까지 확대 실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올해는 전국 초중고생 3700명을 교육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21세기 필수 언어인 코딩을 가르치자는 운동이 사회 각계에서 크게 퍼지기를 소망한다.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최고과정 명예주임교수·전 IMF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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