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월세노믹스

신준섭 2021. 10. 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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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 기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월세’였다. 천정부지 집값과 지난해 7월 임대차 3법을 계기로 뛰어오른 전셋값을 대출 없이 감당할 여력이 서민에게 있을까. 결국 앞으로 서민은 싫든 좋든 조만간 월세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라는 판단이 뇌리를 스쳤다. 지난해 8월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던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금융 당국은 실거주자를 위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한 것도 아닌데 뭔 소리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팩트 자체는 맞는다. 하지만 디테일을 따져보면 항변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둔 30대 후배는 신혼집을 알아보다가 주담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제주도 소재 단독주택을 모친과 본인, 2명의 동생이 물려받았다. 법정지분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속받았는데 1주택자라서 주담대를 받을 수 없었다. 전세자금대출도 있지만 막상 부동산시장을 돌아다녀보니 서울시내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고민 끝에 결국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통해 집을 사면서 ‘영끌족’에 편승했다. “뭔가 홀린 거 같다”고 했다. 그나마도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5월에 계약했으니 망정이지 지금이라면 월세였겠죠”라고 말했다.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주변을 잠깐만 둘러봐도 서민들은 저마다 제각기 다른 사정을 지니고 산다. 금융 당국이 규제를 통해 제한적으로 열어 둔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할 이는 차고도 넘친다. 세밀한 눈이 달리지 않은 행정의 잣대는 서민과 투자의 경계를 면밀히 걸러낼 수 없다. 누군가의 퇴직금 50억원 소식을 들으며 한숨 짓던 서민 가운데 일부는 은행문을 두드렸다가 눈이 어두운 행정 앞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어야 한다.

지난 2분기 기준 1806조원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서민들이 감내해야 할 ‘콜래트럴 대미지(Colleteral Damage)’ 정도로 치부할 만한 정당성은 없다. 특히 이 상황에서도 월세를 종용하는 모습은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당정이 지난달 협의를 통해 청년을 돕겠다며 내놓은 ‘청년 무이자 월세 대출’이 대표적이다. 이젠 월세마저 빚내서 살라는 것처럼 읽히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 같다.

역사가들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이랬으면 어떨까’란 말을 경계하라 이른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 H. 카의 말처럼 반면교사를 삼아야지 과거를 가정으로 비판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 급등 이전인 2018년이나 2019년쯤부터 가계대출을 이런 식으로 조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거 같다. 각종 수단을 총동원해 집을 사는 영끌족이란 단어의 탄생을 막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임대차 3법도 없었던 시대여서 전세 품귀 현상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절이다. 빚도 내기 힘드니 적정 수준의 전세로 눈을 돌리지 않았겠는가.

어찌 보면 월세 시대로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가격 급등→임대차 3법→신용대출 규제. 뒤섞이지도 않고 딱 이 순서대로 진행된 경제 정책에 감히 ‘월세노믹스’란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 전세 살면서 돈 모아 좀 더 큰 집으로 옮기거나 집을 사는 서민들의 희망 사다리는 월세노믹스로 짓밟혔다.

이 문제를 타개하고자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공급 대책을 내놓는다. 좋기는 한데 곳곳에 위험해 보이는 구상도 숨어 있다. 100만 가구에 달하는 질 좋고 저렴한 월세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기본 주택’이 특히 눈에 띈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부국 투르크메니스탄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누구나 상징적인 금액만 내면 정부에서 집을 줬다. 결과는 희한하게 나타났다. 투르크메니스탄 청년들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노력해봤자 상류층이 될 수도 없고 노력을 안 해도 미흡하나마 생계가 된다. 역동성이 최대 무기인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를 축적하고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월세노믹스로는 이루기 힘든 일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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