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힘이 아니라 실력을 기르는 기독교인 되기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장소설이다. 부유층 자제인 주인공이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해 집으로 돌아가는 얘기를 담았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과 직설적 화법, 장소를 이동하며 마주치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낸다. 수채화 같고 미려한 문체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데미안’이나, 자아실현과 완성을 보여주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같은 작품일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설은 ‘루저’ 주인공의 불량함과 불온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문장에서 반복되는 형용사들은 이를 더욱 부각한다. 화난, 미친, 지겨운, 싫은 따위 등이다. 책 읽기를 거의 마칠 때까지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형용사들이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근래 설문조사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거리를 두고 싶은, 사기꾼 같은, 이중적인, 이기적인. 누가 떠오르는가. 지난해 6월 실시된 ‘종교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등장한 개신교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란다. 화나는 조사 결과다. 반면 정반대의 형용사도 나왔다. 온화한, 따뜻한, 가족적인, 깨끗한, 윤리적인, 절제하는. 천주교인과 불교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 이 역시 개신교로서는 짜증 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은 신자들이 어쩌다 이렇게 뒤틀려 버렸나. 하긴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교회나 기독교인의 모습이 어디 정상인가. 넷플릭스 세계 1위를 찍은 ‘오징어 게임’에서 크리스천은 밑도 끝도 없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광신도로 비친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든,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든, 먹잇감이 되어 조리돌림당하는 형국이다. 개탄스러운 현실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이러한데 어디 가서 하소연하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시 22:1)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교회엔 반전의 기회는 없을까. 단언컨대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교회와 기독교인 한 명 한 명이 실력을 길러 간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력은 힘이 아니다. 실력은 우선 참고 견디는 것에서 출발한다. 방법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에 명시돼 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4:12~13, 새번역성경) 쓰레기임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단 기준을 높여야 한다. 그저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공부해서는 안 된다. 월급 받기 위해 일해서도 안 된다. 달라야 한다. 진심과 성실함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 어쩌면 건강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44억7000만원이라는 ‘산재위로금’ 따위는 꿈도 꾸지 말자.
남이 알아주든 말든, 가던 길을 걸어가자. 기도와 예배, 성경 읽기 등 신앙 행위는 당연히 기본이다. 5세기 무렵 이탈리아 출신 베네딕투스가 ‘규칙(Rule)’을 써서 서방교회의 수도원운동을 유행시켰던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각자의 규칙을 만들어보자. 혹시 착한 일을 하게 된다면 남이 모르게 하자. 목회자들은 더 엄격한 윤리로 목회 사역에 임하자. 이렇게 기독교인의 ‘루틴’을 만들어가자. 그러면 언젠가는 기독교인을 향한 불온한 형용사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인기 있는 이유는 까칠한 주인공이 고백하는 희망 때문이다. 명대사는 이렇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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