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부모와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약속한 벌을 줄 때 조차도 아이 감정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거다.
초등학교 3학년 남아인 K는 밤마다 숙제 와의 전쟁을 한다. 숙제 뿐아니라 부모와도 매일 밤 전쟁을 치른다. ‘그러니까 낮에 안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니?’ ‘너 때문에 가족들도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앞으론 게임을 절대 못하게 하겠어!’ 엄포를 놓고 야단도 치고 하지만 이런 상황은 매일 반복된다. 부모도 아이 숙제를 봐주느라 힘든 점도 있지만 성장기인 아이가 밤잠도 설치면 자정이 넘어서까지 숙제를 해야 하니 안타깝다. 종종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어? 그러니까 학원은 모두 때려 치라고 했잖아!!’ 아빠도 화를 참다가 엄마에게 폭발하기도 한다. 불똥은 다시 아이에게 튄다. ‘뭐가 되려고 이 모양이니? 너는 게임 중독이야? 머릿속이 온통 게임 생각뿐이지?’ 가뜩이나 밀린 숙제로 괴로운 아이는 이런 말에 자극이 되어 대들고 반항한다.
물론 K에게도 정해진 규칙이 있다. 숙제를 미리하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규칙이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흐지부지 된지 오래다. 엄마가 마음을 굳게 먹고 ‘잠자던 규칙’을 실행하려고 하면 아이가 반항을 하고 성질을 내고 떼를 쓰고 졸라대니 포기하게 된다.
행동 수정의 기본 원칙은 결과가 자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가 약속한 행동을 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 각각 거기에 상응하는 약속된 결과를 맛보게 하라는 거다. 즉 ‘미리 숙제를 하면 게임을 할 수 있고, 숙제를 못했을 때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물론 아이가 상(게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고 행동의 변화와 바람직한 행동의 학습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원하는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가 문제다. 이때는 부모는 훈계나 잔소리를 늘어놓기 쉽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부모는 원하지 않는 결과(게임을 할 수 없다)를 맞이하게 된 자녀의 심정에 대해 공감을 표현해 주는 것이 키포인트다.
공감은 양육에서 핵심이다. 훈육을 할 때도 그렇다. 하지만 아이가 규칙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미리 혐오스러운 결과(‘게임을 하지 못한다’를 예측하도록 말해 주었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해 훈계를 늘어놓는다.
공감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꾸짖음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어떤 지당한 말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물론 훈계를 듣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 순응하고 반성하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그 순간의 단기적인 반응일 뿐, 부모가 바라는 행동의 장기적인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순간 부모가 할 일은 ‘잔소리를 하려는 자신’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후에 행동을 결정하자. 잔소리나 훈계 대신 그 순간의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자.
“나는 분명히 말했어. 그런데 네가 듣지 않았을 뿐이야.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지키지 못하니 한심하구나. 그 정도도 못 참아서 어떻게 하니?” 라고 말하기보다 “좋아하는 게임을 참고 숙제 먼저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 알아. 엄마도 네가 숙제를 못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어 많이 안타깝구나. 내일은 숙제를 먼저하고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자.
혹시 아이가 숙제를 못한 것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언쟁을 하려하더라도 “네가 힘든 것은 알아. 지금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하자” 간단히 말하고 돌아서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다. 논쟁을 하다 보면 부모도 지치고 화를 내기가 쉬울 뿐만아니라 아이에게 명확한 메시지, 즉 약속한 행동을 하지 못하면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한다는 것이 흐지부지해져 명확하고 단호하게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에도 공감을 표시하되, 행동의 한계는 명확히 전달 되도록 하자.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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