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년 사고조사하다 60% 퇴짜..보험사만 944억 번 보험

편광현 2021. 10.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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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CCTV를 통해 확인된 경북 구미 화공업체 불산가스 누출 당시 상황. 연합뉴스

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 사고에 대비한 '환경책임보험'이 보험사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평균 조사 기간이 16개월 가량으로 너무 긴데다, 보험금 지급 비율도 다른 상품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에 대한 신속한 피해 배상과 지속가능한 경영 보장이라는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의무 가입했더니 사고 조사만 '16개월'


환경책임보험은 2012년 경북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고를 계기로 2016년부터 도입됐다. 유해화학물질 배출 가능성이 있는 기업 1만4102곳이 해마다 의무적으로 10만~32억원씩 내는 정책보험이다. 최근 4년간(2016년 7월~2020년 5월) 기업들이 납부한 누적 보험료만 3290억원에 달한다. 민간 보험사 5곳(DB손해보험·농협손해보험·AIG손해보험·삼성화재·현대해상)이 이를 담당한다.

그런데 기업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이 환경부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환경책임보험의 평균 사고 조사 기간은 발생일 기준 482일에 달했다. 사고가 난 지 1년을 훌쩍 넘겨 조사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유류오염배상책임보험(약 60일)이나 자동차보험(6개월 이내)과 비교하면 매우 긴 편이다.

심지어 2017년 7월 보험금을 신청한 A 기업은 올 6월 말(1460일째)까지도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보험 심사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자 일부 기업들은 보험사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긴 조사 마쳐도 지급률 '40%' 그쳐


기업들은 보험 심사가 끝나도 보험금을 받기 쉽지 않다. 노웅래 의원실에 따르면 환경책임보험의 신청 건수 대비 지급률은 40%로 타 보험에 비해 낮았다. 최근 4년간 77건이 청구됐는데, 이 중 미지급된 게 42건에 달했다. 미지급 사유는 주로 '자기부담금보다 적은 피해액수'(24건)와 '(유해물질이 아닌) 일반화학물질로 인한 사고'(5건)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손해율 단 7%…보험사 수익은 '944억'


사고 후 보험금이 기업들에 거의 돌아가지 않다보니 보험사 수익만 커졌다. 납부 보험료 중 보험금으로 지급된 액수인 손해율은 눈에 띄게 낮았다. 지난해 환경책임보험의 손해율은 7.3%로 가스사고배상보험(19.2%), 특수건물화재보험(66.2%), 농작물재해보험(186.2%) 등 다른 정책보험들보다 훨씬 인색했다.

그러다보니 4년 동안 기업들이 납부한 3290억원 중 보험사가 거둔 수익은 944억원(29%)에 달했다. 보험 설계 당시 목표 수익 5%의 6배에 가깝다. 설계는 환경부와 보험개발원이 함께 했다. 보험사업단은 DB손해보험이 45%(대표보험사), 농협손해보험 30%, AIG손해보험·삼성화재 각 10%, 현대해상 5%를 차지한다. 설계·운용 구조만 보면 사실상 담당 보험사만의 '특혜성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환경부 "전담기관 설치해 신속 조사"


지난 5월 충남 보령에서 보령해양경찰서와 해양환경공단이 유해화학물질이 해상에 유출된 사고를 대비한 화학사고 대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부는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있었고,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신속 공정한 조사를 위한 전담 기관이나 전문 손해사정사를 두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보험사업단에서 지정한 전문 손해사정사가 사고 조사를 하고 배상심의회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험요율은 지난 5월 보험대상 기업들이 유리하도록 자기부담금 비율을 내리는 등 이미 개정을 해둔 상태"라고 덧붙였다.

노웅래 의원은 "환경책임보험은 환경을 보호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들 보험료로 민간 보험사 배만 불리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준조세적 성격이 강한 제도인 만큼 보험사 이익이 아닌 환경 피해 복구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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