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 여사의 한국인 양녀 "달란트 통해 타인의 삶 꽃피워요"

우성규 2021. 10.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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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핀 장미/줄리 헤닝 지음/정혜연 옮김/고요아침
펄 벅 여사의 딸, 줄리 헤닝의 삶을 두고 이웃들은 ‘개천에 핀 장미’라고 불렀다. 파란 원피스의 줄리 헤닝(앞줄 오른쪽 세 번째)이 목회자 남편, 두 아들 내외, 다섯 손주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한국펄벅재단 제공


줄리 헤닝(68)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성 작가 펄 S 벅(1892~1973) 여사의 딸이다. 스스로 밝힌 이름은 ‘순이 구 줄리 컴포트 월시 프라이스 헤닝’이다. ‘개천에 핀 장미’(고요아침)는 헤닝의 영문 자서전 한글 번역본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 백인과 한국 엄마 사이 부산에서 태어나 아빠 없는 혼혈아라는 온갖 핍박 속에서 자라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배우고 수학 교사이자 목회자 사모로서 아름다운 영혼을 꽃 피우게 된 여성의 특별한 일대기다.

‘순이’ 이름은 생모 정송자씨가 지었다. 정씨는 이북 출신 피난민으로 미군이 드나들던 찻집에서 ‘꼬마’라고 불린 미군 장교를 만나 53년 순이를 낳는다. 전쟁이 끝나고 꼬마 장교가 떠나 버린 후 혈통을 중시하고 혼혈아를 거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 모녀는 경기도 파주 법원읍으로 이주해 모진 삶을 이어간다. 가난 때문에 미군 병사들과 ‘친구’가 되어야 했던 엄마는 순이가 학교 갈 나이에 이르자 인근 성당에 찾아가 구씨 성의 사제에게 간청해 ‘구’씨 성으로 학교에 등록하게 된다. 어린 순이의 눈에 비친 엄마와의 쪽방촌 삶은 비록 기아에 허덕였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펄 벅 여사와 함께했던 헤닝. 한국펄벅재단 제공


‘줄리 컴포트 월시’ 이름은 두 번째 어머니, 펄 벅 여사가 선사했다. 선교사 자녀로 중국에서 자란 펄 벅 여사는 ‘최진주’라는 동양 이름을 썼다. 순이와 같은 아이들을 차별과 가난 속에서 건져내기 위해 온몸을 바쳐 일했다. 미국 내 인종 차별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49년 ‘웰컴하우스’를 세웠으며,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아시아 주둔 미군과 현지 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고아들을 돕기 위해 64년 ‘펄벅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에선 67년 유일한 박사와 함께 경기도 부천에 소사 희망원을 설립해 2000명의 혼혈 아동과 가족들의 교육과 복지를 돌봤다.

지금은 펄벅기념관이 들어선 소사 희망원에 잠시 머문 순이는 6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펄 벅 여사의 농장 그린힐스에서 살게 된다. ‘줄리’는 ‘젊다’란 뜻이 있고 ‘컴포트’는 줄리가 펄 벅 여사에게 위안이 된다는 뜻이며 ‘월시’는 펄 벅 여사의 두 번째 남편 성이다. 펄 벅 여사는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지성과 정성으로 줄리를 돌본다.

‘프라이스’는 세 번째 양부모의 성이고 ‘헤닝’은 결혼한 남편의 성이다. 펄 벅 여사 사후 세 번째 부모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된 줄리는 대학 졸업 후 중학교 수학교사로 25년 일하다 은퇴했고, 같이 교사로 일하던 남편 더그 헤닝은 현재 가정치유 전임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두 아들과 두 며느리와 다섯 손주의 할머니가 된 줄리 헤닝은 “목회자의 아내로 미소와 열정, 격려와 상담의 말, 섬기는 마음, 환대의 달란트를 통해 어디에 있든지 다른 사람을 꽃피우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81년부터 지금까지 350개 이상의 교회 사회기관 대학에서 연설했으며 워싱턴DC 의회 청문회와 뉴욕 카네기홀에서 다문화 가정의 삶에 대해 증언했다. 줄리 헤닝은 “장미꽃은 무성하게 자라나 꽃피울 수 있다. 심지어 개천에서라도”라는 말과 함께 길 고 긴 자신의 이름으로 자서전을 마무리한다.

헤닝의 친구가 그린 장미 그림이 표지인 한글판 자서전. 한국펄벅재단 제공


한글판 책은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이 출간을 주도했다. 한국펄벅재단은 ‘출생으로 인해 불이익이나 편견 혹은 차별 없이 어린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돕는다’는 펄 벅 여사의 정신을 구현하며 최근엔 다문화 가정도 함께 돌보고 있다.

시인인 권택명 한국펄벅재단 상임이사는 “책은 고통과 슬픔의 어둠 속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가슴 벅찬 인간 승리의 기록”이라며 “한국교회 성도님들께 은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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