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삶·종말론에 맞선 대담한 낙관론, 숫자로 입증하다

김남중 입력 2021. 9. 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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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863쪽, 5만원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을까. 많은 지식인의 걱정과 넘쳐나는 부정적 뉴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세계는 지금 망해 가는 중인가.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세계는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 핵발전소, 바이러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어느 순간 세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에 대해서도 맞선다. “인간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대담한 낙관주의다. 그것은 어디서 나올까. 숫자다. 스티븐 핑커는 신간 ‘지금 다시 계몽’에서 75개 그래프를 제시하며 전 세계에서 삶, 건강, 번영, 안전, 평화, 지식, 행복 등이 증가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는 폭력의 감소를 입증해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음을 알려줬다.

“2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극빈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90%에서 10%로 줄어들었고, 이 감소의 거의 절반이 지난 35년 동안 일어났다.”

“2세기 전에 가장 부유한 국가(네덜란드)의 기대 수명은 정확히 40세였고, 당시에 기대 수명이 45세 이상인 국가는 없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기대 수명도 54세이며, 기대 수명이 45세 이하인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국가들이 빈민 구제, 교육, 사회 보장에 쓴 돈은 평균적으로 GDP의 1.5%였다. 오늘날 (OECD 국가들의) 사회 지출은 평균적으로 GDP의 22%를 차지한다.”

최근 수십 년간 세계인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세계 총생산은 200년간 100배 증가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산다. 세상은 진보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고 느낀다. 세계는 빈곤을, 전염병을, 인구폭발과 자원고갈 위기를 극복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종말론적 위기 담론이 끊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스티븐 핑커는 “지식인과 언론이 과도한 비관주의에 경도돼 있다”며 “세계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상의 진보를 이끌어온 힘은 이성, 과학, 휴머니즘을 요체로 한 계몽주의라며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다시 계몽’이란 제목은 그런 의미다.

책은 대담하고 논쟁적이다. 저자는 번영의 치명적 부산물로 얘기돼온 불평등과 환경위기마저 지나친 비관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불평등은 중대한 문제지만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 인류가 퇴보했다는 증가가 되진 못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이 심화된 게 문제가 아니라 빈곤이 해결된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회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다음 단계가 기본소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보편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이 가져올 이익은 무시할 수 없다”며 “기본소득의 실제 효과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하는 효과,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환경위기론과 관련해서는 인구폭발, 자원고갈, 핵위기 등 녹색주의가 주장해온 묵시론적 예언이 모두 틀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기, 수질, 숲과 농지 비율 등 지구 환경이 근래 개선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기후변화가 핵심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성장을 죄악시하는 ‘탈성장’은 해법이 될 수 없고 제도적·기술적으로 ‘탈탄소화’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세계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비관주의에 눌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 불평등과 환경위기에 대한 새로운 토론을 열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계몽주의를 꺼내 드는 것이 문화의 퇴행이 되진 않을지, 장기적 추세와 평균을 보여주는 수치가 포착하지 못하는 지금의 문제, 작지만 절실한 문제를 외면하는 논리로 사용되진 않을지 의문도 든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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