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집단대출 막혔대요" 검단신도시 당첨돼도 날벼락

염지현 2021. 9. 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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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찾아온 '대출 한파'에 내 집 마련을 준비하던 실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주요 은행 ATM기기가 나란히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한 달 뒤에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갑자기 대출이 안 된다네요. 중도금 갚느라 신용대출까지 끌어썼는데 당장 2억원을 어디서 구할지 막막합니다.”

오는 11월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입주를 앞둔 직장인 이모(46)씨는 요즘 대출금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번 달 초반만 해도 금융사 한 곳에서 2.95% 금리에 잔금 대출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말을 바꿨다. 입주 때 아파트 추정 시세가 15억원 넘어 잔금 대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규제로 은행이 앞다퉈 대출한도를 죈 시점이다.

이 씨는 “하루 휴가 내고 2금융권은 물론 신용대출까지 알아보는 데 돈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러다 어렵게 마련한 내 집을 전세로 주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이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찾아온 ‘대출 한파’에 내 집 마련을 준비하던 실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관리에 따라 대출 한도를 줄인 데다, 무주택 실수요자가 주로 받는 전세자금대출이나 집단대출까지 서서히 죄고 있어서다.


분양시장에 집단대출 막히는 사례 등장


LH가 '인천검단 AA13-1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모집 공고에서 ″금융권의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하다″고 공지함. LH제공.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30일 주거복지 정보를 제공하는 마이홈포털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검단신도시 안단테’ 입주자모집공고를 통해 “금융권의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인해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함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

이곳에 청약 신청한 김모(45)씨는 당첨자 발표가 나기 전인데도 걱정부터 앞선다. 84㎡ 주택의 분양가가 약 4억2000만원인데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최소 현금 2억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해서다. 김씨는 “신용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현금 2억을 마련하려면 지금 사는 전세보증금을 빼고 월세로 이사하는 방법뿐”이라며 “빠듯한 살림에 월세가 부담스럽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9억원 이하 단지는 건설사가 금융기관을 통해 집단대출을 알선해준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강도가 거세지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의 대출 압박이 커지며 금융사들이 집단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확보 비상등 켜진 실수요자


국민은행 바뀐 잔금대출 산정기준에 따른 대출가능액 그래픽 이미지.
금융당국의 기세에 집단대출 문턱까지 높아지자 청약 당첨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 데 집단대출을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40대 후반으로 2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라는 청원인은 “10월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은행은 집단대출을 고금리에 선착순으로 실행한다”며 “돈 없는 서민은 입주하지 말라는 얘기냐”며 성토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전세금이 부족해서, 중도금과 잔금이 부족해서 마음고생 하는 서민들이 많다”며 “입주 예정자에게는 한도를 따지지 말고, 대출을 막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30일 오후 5시 현재 이 게시글에 1만9874명이 동의했다.

실수요자의 마음은 타들어 가지만 금융사의 대출 죄기 강도는 세지고 있다. 은행 한곳이 돈줄을 죄면 다른 은행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연쇄적으로 추가대책을 꺼내고 있어서다.

국민은행은 지난 29일부터 집단대출 관련 잔금대출취급 시 담보가치 산정기준을 ‘KB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꿨다. 요즘처럼 집값(시세)이 치솟을 때 분양가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산정하면 대출 한도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은 이르면 10월부터 전세계약 갱신 시 대출 추가 한도를 증액범위 내로 제한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이 지난 29일 시행한 대책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2억원의 전세대출이 있는 세입자가 계약갱신하며 전셋값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었다고 가정하자. 그동안은 4억8000만원(전체 임차보증금의 80%)에서 기존 대출금(2억원)을 제외한 2억8000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집주인이 올린 보증금 증액분인 2억원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세대출 가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다.

축소된 국민은행의 전세대출 한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홍남기 "10월 중 추가 가계부채 대책 내놓겠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규제의 ‘성역’이었던 전세대출도 겨냥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주로 받는 대출이라 예외로 뒀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를 전세대출이 이끌고 있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30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10월 중 추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며 “가계부채 증가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대출이 꼭 필요한 수요자들이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추가대책으로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줄이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전면적인 대출 규제에 실수요자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금융기관 등과 협의를 통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실수요자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실수요자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체계적이고 촘촘하게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지현ㆍ홍지유ㆍ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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