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외설은 안돼" 소설가를 감금하다

김남중 2021. 9. 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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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일몰의 저편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368쪽, 1만5800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자의 고발이 있었습니다. 마쓰 유메이는 강간이나 폭력, 범죄를 긍정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고.”

‘일몰의 저편’은 강간과 소아성애증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한 뒤 ‘총무성 문화국 문화예술윤리향상위원회’(문윤)라는 정체불명 기관의 소환을 받고 외진 바닷가의 ‘요양소’ 건물에 감금되는 여성작가 마쓰 이야기다.


“일년 반 전에 헤이트스피치법이 가결되었죠. 그걸 계기로 헤이트스피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표현물에 등장하는 성차별, 인종 차별도 규제해 나가기로 한 겁니다. 해서 우리는 먼저 소설을 쓰는 작가 선생들이 룰을 지키게 하자고 얘기가 된 겁니다.”

새로 설치된 문윤은 작품에 대한 고발이 접수되면 해당 작가를 요양소에 ‘입원’시킨 후 사상 교육을 시킨다. 교육 목표는 단순하다. 아름다운 이야기, 올바른 이야기만 쓰라는 것. 외설이나 폭력, 범죄, 체제 비판 등은 쓰지 말라는 것이다.

“강간만이 아닙니다. 선생은 범죄소설 같은 것도 썼더군요. 살인이나 절도도 썼고 그 밖에 또 뭐가 있더라. 그래, 훔쳐보기 취미를 가진 남자 이야기도 있었지.”

관리소장과 면담에서 마쓰는 절망감과 함께 공포를 느낀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었다”는 태도로 소설을 써왔다.

교도소보다 혹독한 환경과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문윤에 순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과연 풀려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요양소에선 작가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문윤의 목표가 갱생이 아니라 절멸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쓴 기리노 나쓰오(70·사진)는 1993년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나오키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 주요한 문학상을 모두 받았다. 올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본 펜클럽 회장에도 취임했다. 하지만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극심한 비난에 시달려왔다. 그의 소설은 어둡기로 유명하다. “빛과 희망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북스피어 출판사의 김홍민 대표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에 대해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네 명의 주부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죽이고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는 내용의 ‘아웃’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어두운 스토리와 음습한 묘사에 기겁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며 “불륜과 이어진 아동 유괴 사건을 다룬 ‘부드러운 볼’이나 조직폭력배와 마약상, 이상성욕자를 대거 등장시켜 세상의 불합리에 맞서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얼굴에 흩날리는 비’ 등은 기존의 일본 문학이 묘사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고 평가했다.

‘착한’ 소설들은 독자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지만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반면 ‘쎈’ 소설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악과 고통, 절망 등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자신을 닮은 여성 소설가를 등장시킨 이 소설에서 작가는 올바른 소설만 써야 하는가, 올바르고 올바르지 않다는 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정하는가 묻는다. 출간 후 인터뷰에서는 해피엔딩만 요구하는 독자들을 비판했다.

“지금의 일본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묘사하는 소설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끝까지 싸워 달라, 그것이 소설로서의 올바른 자세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실에는 쓰라린 패배도 있고 전향도 있는 법이죠. 그걸 쓰는 것이 소설인데 지금 소설 속에선 패배조차 용납되지 않아요. ‘일몰의 저편’은 그러한 분위기와도 싸우는 소설입니다.”

올바른 소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설가를 감금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치워버리려는 시도, 다른 목소리나 이질적인 존재를 혐오하고 처벌하려는 욕망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런 시도나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말이 올바름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트집 잡기와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언론은 논란들을 비판 없이 키우고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 정치가 유행하는 가운데 상식의 몰락, 자유의 몰락을 상징하는 ‘일몰’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시대의 분위기를 경고하려는 듯 일몰의 저편에 있는 디스토피아를 그려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올바른 세상에서 마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기리노 나쓰오의 절망은 견고하다. 그 견고한 절망은 그만큼 간절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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