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가을날, 은평둘레길 함께 걸어보실래요?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2021. 9.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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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둘레길 1코스를 걸으며 만난 보물들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서오릉 고개, 은평둘레길 입구
ⓒ 은평시민신문
둘레길이란 말에 마음을 탁 놓아버렸다. 동네 둘레길이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게 아닐까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무작정 나선 은평둘레길 1코스. 등산화는 너무 무겁지 않을까 생각에 얇은 단화를 신고 길을 나서 서오릉고개에 도착했다. 

은평둘레길 1코스 봉산해맞이길은 약5.6Km로 2시간이면 거뜬히 갈 수 있다고 안내되어있다. 안내대로라면 오후 4시에 출발해도 가볍게 마무리하고 내려올 수 있는 코스다.

하지만 서오릉고개에서 시작한 1코스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끝없는 오르막길과 계단을 만나며 가다 서다 또 쉬었다 물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하다보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조용히 집에서 지내기로 한터라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길을 나선 것일까? 
 
 봉수대까지 930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 은평시민신문
봉수대까지 930m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1Km도 되지 않는다. 나는 걸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향한다. 산에 올라와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하지 않았나, 건강검진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땀 흘리며 운동을 합니까?"라는 질문 앞에 늘 어물쩍 넘어가곤 했는데 이제 그 대가를 치루는 구나... 별의별 상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둘레길은 잘 정비돼 있고 안내표지판도 곳곳에 자리 잡아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추석 전이라 그런지 둘레길을 찾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한두 명이 나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길을 재촉한다. 봉산을 조금 더 오르니 쉬어갈 수 있는 정자, 벤치,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코로나19 탓인지 북적거릴법한 정자도 고요하기만 하다.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봉산정
ⓒ 은평시민신문
저 멀리 봉산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맑은 가을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봉산은 은평구와 고양시의 경계를 긋는 능선으로 해발 209m의 낮은 산이다. 이 곳에는 봉수대가 설치돼 있는데 북쪽에서 외적이 침입하거나 변란이 일어나면 봉화가 올라가고 봉산 봉수대는 무악봉수대로 이어지고 곧장 경복궁으로 향한다. 

봉산은 작은 산이지만 구산동, 신사동, 증산동, 수색동에 걸쳐있으며 은평구에서는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네 뒷산이지만 다채로운 숲 생태계를 볼 수 있는 은평의 보물이다. 

봉산은 봉령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산 정상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평화롭게 앉아 있는 형상에서 유래했다. 이곳 봉수대 자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인근 마을주민들이 모여 횃불을 밝히고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봉산 봉수대
ⓒ 은평시민신문
다시 증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어르신 한 분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둘레길을 찾은 이 대부분은 남자 어르신들이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 건강도 챙길 수 있기에 이 곳을 찾았을 거라 짐작된다. 현재 은평구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8만 5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18% 가량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노인을 위한 정책마련이 시급함이 느껴진다. 
 
 봉산에서 만난 어르신의 뒷모습
ⓒ 은평시민신문
느린 걸음을 옮기다 또 잠시 의자에 앉아본다. 앉은 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나무사이에 걸렸다 다시 흘러가는 구름, 어린 시절 구름 모양을 보며 한없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몸을 일으켜 다시 몇 걸음 걷다보니 얌전하게 앉아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는 것인지 고양이의 표정에 여유로움이 한 가득이다.

숭실고등학교 뒤편으로는 봉산 편백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편백나무숲은 2014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5년간 1만 2400주를 심었다. 피톤치드를 내뿜어 건강을 이롭게 해 인기가 많은 편백나무는 온난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지만 은평에 뿌리를 내렸다. 추위에 약한 수종이 은평에서도 잘 살아나가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봉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팥배나무다. 늦봄에 배꽃 같은 하얀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붉은 팥알 같이 열린다. 봉산 팥배나무숲은 서울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팥배군락지로 희귀성이 높다고 한다. 
 
 팥배나무 안내 표지판
ⓒ 은평시민신문
걸음이 느린 탓일까, 모처럼 오른 봉산에서 구경거리가 많았던 탓일까, 어느 덧 달이 떠오르고 주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증산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다리는 한없이 무겁고 마실 물 한 방울도 없다. 얇은 신발 탓인지 모래알 하나까지도 발밑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다. 둘레길에서 조난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산길을 마냥 걸을 수는 없기에 숭실고 뒤편으로 내려왔다. 
모처럼 도전한 은평둘레길 걷기인데 목적지까지 도착하지도 못하고 내려온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올라가자니 쉬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좀 작전을 바꿔 이번에는 증산역 쪽에서 서오릉방향으로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신발도 새로 한 켤레 사고 물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은평둘레길 1코스. 증산에서 서오릉 방면으로 가는 길.
ⓒ 은평시민신문
이틀 뒤 다시 찾은 은평둘레길 1코스. 증산역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서오릉쪽에 비해 완만하다. 둘레길에 올라가는 길을 찾기 어렵다면 증산정보도서관에서 곧장 산길을 향해 올라가면 된다. 산길을 조금 오르니 증산 체육공원에서 공차기에 여념이 없는 시민들이 보인다.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길을 걷다보면 2018년 은평구 참여예산 사업으로 만든 봉산도시자연공원 전망대가 보인다. 이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안산을 비롯 멀리 관악산, 청계산, 남산서울타워에 롯데월드타워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안내판 문구처럼 서울의 수려한 경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경관도 경관이지만 따스한 가을햇살에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바람까지 더해져 그간 묵은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듯하다. 
 
 봉산의 작은 돌탑
ⓒ 은평시민신문
발걸음을 이어 가다보니 작은 돌탑이 여럿 보인다. 나무가 쓰러지지 말라고 돌탑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오고 간 이들이 마음을 모은 돌이 우연히 쌓이고 쌓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작은 소망 하나하나를 쌓아 올린 이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쌓인 돌 위에 내가 하나 더 얹다 혹여 무너지지는 않을까 조바심 내며 올리기도 했으리라. 
밤송이 여기저기 떨어진 길을 지나니 어르신들이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걷는 모습이 보인다. 이틀 전 얇은 신발을 탓하며 둘레길 완주를 못한 내 모습이 민망해진다. 맨발로 걸으면 돌멩이, 나뭇가지 등이 발바닥을 자극해 혈액순환에 좋고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맨발 걷기의 효능 때문인 듯하다. 
 
 봉산에서 만난 어르신. 맨발로 봉산을 걷고 있다.
ⓒ 은평시민신문
다시 또 이어진 오르막길을 한참 가니 이틀 전 만난 봉수대와 봉산정이 보이고 쉬어 갈 의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눕지 말라고 가운데 칸막이가 되어 있다. 봉산 여기저기에 놓인 의자와 달리 왜 봉산정 의자만 눕지 못하게 했을까? 야박한 생각이 들다가도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힘들게 올라온 길, 보름달을 맞이하려고 보니 온통 하늘이 구름이다. 올해 추석 보름달은 보기 어렵겠구나 포기하고 몇 걸음 내려오니 저 멀리 붉은 보름달이 떠오르고 도시의 불빛과 만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다시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내려온다. 이번엔 수국사 뒤편 나무계단길이다. 대략 700계단 쯤 되는 길을 끝도 없이 내려왔다. 밤이어도 곳곳에 가로등이 있어 위험하지 않게 내려올 수 있는 길이다. 다음에는 봉산에 오르는 길은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는 길은 좀 수월한 길을 택하면 하루 운동으로는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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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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