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사건, 조국, 추미애.. 수사발표 자료가 사라졌다 [이슈&탐사]

문동성,구자창,박세원 2021. 9.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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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⑤ 원칙 없는 사건 공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 자료, 홈페이지에 없어
(왼쪽부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연합뉴스


검찰 보도자료가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최종 수사 결과가 담겨 있어야 할 자료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4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며 해당 사건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그러면서 출입기자들에게 A4 용지 2장 분량의 간략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실장 등 관련자들의 실명은 비공개 처리했다. 현재 이 자료는 검찰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12월부터 적용된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찰이 중요 사건 내용을 보다 폭넓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민 알권리를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4월 검찰은 울산 사건을 심의위에 올리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보도자료는 더 있다. 2019년 12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 사건, 지난해 1월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 지난해 9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병가 의혹 사건, 지난해 10월 정진웅 차장검사의 한동훈 검사장 독직폭행 사건 등이 누락됐다. 국민일보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 이후 주요 공인 범죄 사건에 대한 자료 누락 여부를 조사한 결과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도자료는 원칙적으로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하지만 각급 검찰청의 별도 요청이 있는 경우 대검찰청은 특정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이같은 경향이 있었다는 게 검찰 안팎의 얘기다. 검찰 측은 “보도자료 홈페이지 게시 여부는 각급 검찰청 자율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공인 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검찰 공보 경험이 있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적용 이후 검찰 공보는 원칙적으로 공식 승인받은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하게 돼 있다”며 “보도자료가 갖는 의미가 더 커졌는데 국민이 직접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15조, 16조에는 “형사사건 공개는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하며 자료 배포와 함께 그 자료의 범위 내에서 구두로 공개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민감 공인 범죄 보도자료 누락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 울산시장의 지방선거 당선을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게 골자다. 경찰에 국민의힘 소속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 수사’를 지시하는 한편 정부 부처를 움직여 송 시장의 선거 운동에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송 시장과 전현직 청와대 고위직들이 대거 이 사건에 얽혀 수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월 29일 송 시장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황운하 민주당 의원(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울산사건 공소장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대신 검찰은 A4 용지 3장 분량의 보도자료만 배포한 뒤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피고인 13명 중 송 시장 등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5명의 실명만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이 결정은 법조계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안이 중대하고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의 전말을 감추려 했다는 이유였다.

지난 4월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검찰은 이진석 실장 등 3명을 기소하며 울산 사건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때 출입기자들에게 공개된 A4 용지 2장 분량의 보도자료에는 청와대 비서관급인 이 실장의 실명과 직위도 적혀있지 않았다. ‘A(49, 공무원)’로 표시된 게 전부였다. 당시 검찰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전 장관,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보도자료에는 “나머지 피의자들은 혐의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여 불기소 처분했다”고만 적었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실명도 거론하지 않고, 무혐의를 내린 구체적인 근거도 적어놓지 않은 것이다.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누락된 수사결과 발표 자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보도자료가 홈페이지에서 누락됐다. 이한결 기자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당시 사건을 공개하면서 심의위를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실명과 구체적인 처분 사유 등을 공개하려면 심의위를 열어야 하지만 이를 아예 개최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보도자료는 결국 홈페이지에서 누락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내용도 없고 실명도 없어 국민들에게 내놓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의 자료”라며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주요 공인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 알권리가 더 보장돼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하지만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인 사건의 보도자료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검의 유 전 부시장의 뇌물 사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 추 전 장관의 아들 병가 의혹 사건, 서울고검이 처리한 정 차장검사의 독직폭행 사건 자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추 전 장관 사건의 경우 형사사건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나오는 자료 공개 요건도 지키지 않았다.

서울동부지검 공보관은 “보도자료 홈페이지 게시 여부는 (각급 검찰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자체 판단으로 비공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추 전 장관 사건 자료의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자료 배포의 시급성과 자료 내용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보도자료가 누락된 것은 맞다”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현재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을 일반에 공개 한 걸로 판단해 굳이 올려 달라고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검찰 출입 기자들은 기자들 중에서도 일부”라며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한 자료를 국민들이 찾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행위는 명백한 국민의 알권리 제한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동재는 밝힌 실명, 이용구·최강욱은 비공개

검찰개혁 이후 공인 범죄 공개가 소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례는 또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6일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을 택시기사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보도자료에 ‘이○○(前 법무부 차관, 변호사)’라고 표기했다. 이 전 차관의 실명을 적지 않은 것이다. 정진웅 검사 독직폭행 보도자료에도 정 검사는 ‘A○○ 전 C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비실명처리 됐다. 서울중앙지검이 청와대 비서관급 고위 공직자인 이진석 실장을 기소하면서 실명과 직위를 보도자료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례와 비슷한 경우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12조에는 ‘언론에 실명이 이미 공개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나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의 경우’에 심의위의 의결을 거쳐 실명과 구체적인 지위를 공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여기서 문제는 ‘공개할 수 있다’는 식으로 검찰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개하고 싶은 경우 공개하고 그 반대의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를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사건과 관련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도 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에 ‘A(51세, 공무원)’이라고 비실명 표기했다. 최 대표를 기소할 때는 심지어 공식 보도자료를 따로 만들지도 않았다.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재판에 넘겨진 강효상 전 국회의원도 ‘B, 국회의원’이라고만 표기됐다. 강 전 의원의 경우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이 전 차관의 실명을 보도자료에 적시하지 않은데 대해 “실명을 추단할 수 있는 정보를 보도자료에 적는 것도 실명 공개로 본다”고 말했다. 이 전 차관의 성(姓)인 ‘이’와 직위인 ‘법무부차관’을 적었기 때문에 사실상 실명을 공개했다는 논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런 변명은 안 하는 게 맞다”며 “‘이모 씨’라고 하면 실명 비공개지 이걸 누가 공개라고 생각하겠느냐”고 비판했다.

검찰의 실명 공개는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의 기업인을 기소할 때 그들의 실명을 보도자료에서 공개했는데,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기소할 때는 비실명 처리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공직자도 아니었지만 구속영장 청구 과정에서 심의위를 통해 실명이 공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부서마다 차이가 있기도 하고 (내부 기준을) 완전히 통일되게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1월 공개된 프로축구팀 선수 선발 비리사건 보도자료에 피고인 중 하나를 ‘A○○(50세, 대전광역시의회 의장)’이라고 썼다. A씨는 김종천 당시 대전시의회 의장이다. 대전지검 공보관은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 구체적 실명을 비공개 한 것 아니겠느냐. 광역시의회의장이면 당시 의장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지검이 지난 4월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을 저지른 김태현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대전지검과는 상반된 사례다. 서울북부지검은 김씨의 실명을 공개한데 대해 “워낙 경찰 단계에서부터 신원 공개된 범인이었다”며 “공개한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전했다. 어떤 경우는 ‘다 알고 있으니 안 적어도 안다’, 다른 경우는 ‘다 알고 있으니 적었다’는 상반된 반응이 나온 것이다.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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