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관계 개선 나선 김정은..베이징 정상회담도 청신호 켜지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이지은 기자, 이현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 및 북·미대화를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8개월여 남긴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한편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김 총비서가 이중기준·적대시 정책 철폐 등을 고집하고 있어 극적인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김 총비서가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데 방점을 뒀다고 평가했다. 김 총비서가 "대외사업 부문에서 더욱 불안정해지고있는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환경에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면서 우리의 국권과 자주적인 발전 리익(이익)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사업에 주되는 힘을 넣을 데 대해 밝혔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이를 방증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총비서가 현 정세 속에서 대화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며 "그동안은 남북관계에 끼어 왔던 안개가 상당부분 걷혀나갔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시와 남측의 내년 대선국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북한이 대남관계를 유화적으로 전개하려는 의지가 읽힌다"며 "대남, 대외 메시지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정세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김 총비서가 직접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힌 만큼 내년 초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높아졌다. 양 교수는 "통신선 복원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남측의 의지를 테스트하려 할 것이며, 남측의 태도 및 조치 여하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청와대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동계올림픽이라는 특정한 계기가 어떤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의 최근 기류는 현 정부 임기 내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성과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 등을 통해 한반도 대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지만, 다음 정부에서라도 목표가 이뤄지도록 정부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반도 현안을 둘러싼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면서 남북 관계와 관련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요구한 ‘이중기준’, ‘적대시 정책’ 철폐 등의 조건을 김 총비서도 그대로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에 호응해 기존의 외교 방향성을 바꿀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김 총비서 발언과 관련 국내 언론들의 서면질의에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전제조건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있고 북한이 우리의 접촉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 외교를 모색하고 외교에 열려있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이라며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대북정책 기조인 ‘실용적 접근’에 따른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영국, 프랑스와 함께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회의 소집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도 변수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3국의 요청에 따라 유엔 안보리는 30일(현지시간)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보도에 대한 비공개 대응 회의를 열 계획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중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서방국가가 모두 참여한 것으로 미국이 이번 소집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북한과의 외교채널은 열어두면서도 안보문제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통해 압박하는 기존 정책대로 미국 정부가 안보리 소집을 주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제임스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 입장에서 현재 코로나19와 경제문제 등 국내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은 이어가고 있지만, 2017년 이후 공개적인 핵실험 없이 미국 입장에서 관리 가능한 수준의 도발만 이어가고 있어 당장 큰 관심을 끌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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