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피맛골, 옛터만이 자리를 지키네
고고학자들은 서울에 경주 못지않은 유물이 묻혀 있다고 판단한다. 약 600년 동안 서울, 특히 광화문, 종로 일대의 땅속에는 조선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 수백 년이 흐르고 도시 개발과 함께 그것들은 일부는 땅 위로 나오기도 하고 혹은 더 깊숙이 파묻히기도 했을 것이다.
피맛골은 조선 초기에 형성된 백성들의 길이다. 당시 종로는 한양 최고 번화가였다. 특히 종로는 육의전 등 상점이 몰려 있어 사람들이 부대끼는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든다’ 해 ‘운종가雲從街’라 불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관대작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백성들은 길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고단하고 번거롭기 짝이 없자 백성들은 궁리를 짜냈다. 종로의 큰길 양쪽 작은 골목길에 그들만의 통로, 가게를 만든 것이다. 이곳이 바로 피맛골이다. ‘피맛’은 ‘말을 피한다’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왔다. 피맛골은 종로 큰 길을 사이로 양 옆으로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졌다.
이곳 역시 재개발, 도심 정비를 피할 수 없어 길은 끊어지고 작은 가게들은 이곳을 떠났다. 그럼에도 이 피맛골을 떠나지 못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는 집들이 있어 피맛골을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은 1937년 문을 연 이래 지금도 여전히 소 잡뼈를 우린 육수에 시원한 배춧잎, 우거지, 콩나물, 선지와 내포를 넣어 허기지고 속 쓰린 이를 달랜다. 애초 청진옥은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화옥, 그리고 6.25 후 청진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피맛골의 상징으로 ‘청일집’도 있다. 1945년에 문을 연 이 녹두빈대떡집은 들어서는 순간 돼지기름의 녹진하고 구수한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특히 어리굴젓과 함께 먹는 빈대떡 맛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끈다. ‘열차집’도 마찬가지다. 6.25 때 담벼락에 판자를 세워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열차의 칸 같다 하여 당시 ‘기찻집’으로 불렀다. 빈대떡과 모둠전 맛은 여전한데 특히 반가운 것은 종각 제일은행 뒤에 마련한 집의 외관과 내부가 피맛골의 원형처럼 유지된 점이다.
옛 피맛꼴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기억이 여전한한 피맛골은 또 시간을 헤쳐 나갈 것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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