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가 부른 두려움 탈레반 정권 아닌 '국가 위험'

2021. 9. 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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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로 아슈라프 가니 정권이 붕괴하며 아프간 국민의 해외 탈출 러시가 이어져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과거 베트남 미군 철수 후 사이공 함락과 함께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던 때를 연상케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국민소득이 낮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정치, 사회 이슈로는 시끄러웠지만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연 509달러(약 60만원)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새로 집권한 탈레반 정권은 종교 근본주의 색채가 강하다. 현재의 모습을 단기간 내 벗어버리고 경제 발전에 초점을 둬 가까운 미래에 성장 국가로 변신한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 규모가 미미한 만큼 이번 아프간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지만, 한편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나라에 경제, 사회 시스템을 직접 이식하려는 시도는 그 나라에 자생력이 없는 경우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프간 사태로 다시금 확인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흔히 발견되는데 이를 주도한 측에 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만 초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프간 같은 나라에 직접 개입하거나 투자하기보다는 무역 등 간접 방식으로 경제적인 상호 호혜를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최근 해외 직접 투자를 할 때 ‘국가 위험(country risk)’ 요인이 중요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가 이뤄진 국가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며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지는 사례다. 재산권이 훼손되는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베트남 정권 붕괴 이후 사회주의 팽창에 따른 국가 위험으로 해외 투자 우려가 커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1978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1979년 친미 팔레비 왕조 붕괴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자 기업들의 석유 자산이 몰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제경제학의 ‘무역의 요소함량이론(the factor content theory of trade)’에 따르면 굳이 노동이나 시설 같은 생산 요소를 해외에 보내거나 받아들이지 않아도 국제 무역을 통해 이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무리하게 해외에 투자하거나 직접 자산을 확보할 이유가 적다. 투자하려는 국가는 무역 등 간접 방식을 택하거나 투자 대상 전환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해외 자본 유치가 어려워진 국가는 투자, 고용 창출 등 손실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국가 위험이 커지면 ‘자국 우선주의’ 강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프간 사태 이후 등장한 ‘국가 위험’이 해외 직접 투자를 위축시키고 자국 우선주의를 고조시킴으로써 국가 간 효율적인 교류, 투자를 저해할 우려가 크다. 우리 기업도 해외 투자를 할 때 국가 위험이 커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국가 위험이 있는 투자처로 인식되지 않도록 재산권 보호, 조세 안정성에 힘써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7호 (2021.09.29~2021.10.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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