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이 경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김소연 2021. 9. 30. 09: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사람을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즐겁고 편안한 추석 연휴 보내셨는지요? 예전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진 못해도 그래도 삼삼오오 식사 한 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겠지요. 올 추석 이야기꽃 화제의 한 가지가 넷플릭스에 올라가자마자 미국에서 1위를 움켜쥐었다는 ‘오징어 게임’이었을 듯합니다.

하도 난리여서 ‘데스 게임’ 장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TV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10년을 근무한 자동차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이런저런 자영업에 도전했다 망하는 와중에 사채빚을 끌어 쓰고 그 때문에 신체포기각서까지 쓴 성기훈(이정재 분),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 타이틀을 달고 증권 회사에 취직해 잘나가는 듯했지만 선물에 손대 60억원의 채무를 지게 된 조상우(박해수 분), 동생과 함께 탈북한 새터민으로 북한에 있는 부모를 데려오기 위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강새벽(정호연 분) 등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456명이 어느 날 오징어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두 6가지 게임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상금을 받고, 실패하면 탈락한다는 간단한 개념이죠. 탈락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만 빼면 말입니다.

게임의 법칙은 딱 세 가지입니다.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 실제 첫 게임을 하면서 참가자 절반의 죽음을 목도한 살아남은 이들은 게임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절규합니다. 결국 과반수가 동의해 게임은 중지되죠.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이들의 90%가 “현실이 더 지옥이다”라며 게임을 다시 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남한산성’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의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우리는 왜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이 경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죠.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끼리 물고 물리는 스토리가 펼쳐지면서 내내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에 방점이 찍힙니다. 당연히 ‘왜 경쟁하는가’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가지 질문보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세계 2위인 작금의 시대. 고시원에서 혼자 살다 길을 잃고 인간성마저 잃어버린 백수 청년, 코로나19로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 자영업자, 남들과 비슷하게 살기 위해서는 대박 한 탕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흙수저 엘리트 등. 다점포율(한 점주가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비율)이라는 지표로 자영업 트렌드를 예측하고, 아파트값 잡겠다고 온갖 규제로 꽁꽁 묶어 매도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는 와중에 지식산업센터 같은 틈새 상품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고, 코인 투자를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연재하는 것이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김소연 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7호 (2021.09.29~2021.10.0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